문화상품을 리메이크하는 작업에는 필수적으로 리스크가 동반된다. 특히나 한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며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라면 부담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미 상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가져오는 만큼 화제성에 대한 부분이 담보된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원작의 팬들을 품고 새로운 지지층까지 끌어들이는 과정은 절대 수월하지 않다. 종종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듣거나 흥행에 있어 큰 성과를 거둔 리메이크작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발표 당시 영향력이 컸던 작품일수록 리메이크작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잘해 봐야 본전'에 그치는 위험한 작업인 셈이다. 현재 상영 중인 리메이크 영화 두 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동명의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흥행과 평가 양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나, 홍콩 누아르의 전설적인 영화 '영웅본색'의 리메이크 버전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소문 타다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 긍정적
성공적인 리메이크 사례는 최근 개봉된 판타지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지섭과 손예진이 주연을 맡고 신인 이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동명의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원작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한국식으로 또 한 번 영화화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나 이미 2004년에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에도 잘 알려진 터라 '영화 대 영화'로 비교를 피할 순 없는 상황이다.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개봉 당시 일본 현지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흥행에 성공했고 '비의 예감' '시간을 넘어서' 등 OST까지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인 2005년에 한국에서 개봉됐는데 16만 명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으며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도 썩 좋지는 못했다. 멜로 라인과 감각적인 영상 및 음악 등에 대한 호평이 나오긴 했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 그리고 타임슬립 등 판타지 요소가 당시 국내 관객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장 개봉을 마친 후 오히려 긴 시간에 걸쳐 회자되며 재평가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국내 팬층을 형성하며 수작으로 불리게 됐다.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판이 쌓아둔 인지도와 호감도를 기반 삼아 본격적인 국내 관객 공략에 나섰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제목, 하지만 막상 내용을 정확히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 리메이크 작업에 있어서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가령 영화를 리메이크할 때 원작에 출연한 배우들의 이미지가 강렬하다면 재해석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경우에는 배우들의 비중이, 특히 남자 주연배우의 이미지나 호감도가 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한국 버전 제작에 있어서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한국판에서는 일본판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와 확연히 느낌이 다른 배우 소지섭을 캐스팅했는데, 순진하고 착해보이되 잘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었던 일본판의 남자 주연배우에 비해 오히려 멜로 영화의 느낌이 잘 살아나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끌어내고 있다. 또한, 캐릭터의 이미지는 바꾸되 내러티브와 감수성은 훼손하지 않고 옮겨와 일본판의 팬들까지 포용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와 달리 판타지 소재에 대한 국내 관객 수요가 증가한 지금, 이 시기 시장에 적합한 내용을 다시 꺼내 드는 건 꽤 영리한 전략이었다. 14일 개봉 후 2주 동안 2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며 사실상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내리막 타다
◆'영웅본색4' 원작 벽 넘지 못해
새롭게 만들어진 2018년 버전 '영웅본색'은 결국 '본전'도 못 건지고 혹평을 듣고 있다. 국내에 '영웅본색4'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는 1986년 개봉된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1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웅본색'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홍콩 누아르 붐을 일으키고 주윤발-장국영-적룡 등 주연배우들을 톱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선글라스에 성냥개비를 물고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총을 난사하던 주윤발, 그리고 장국영이 부른 주제가 '당년정' 등 캐릭터의 이미지와 사운드트랙 등 영화의 요소 하나하나가 화제가 됐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3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980년대 대중문화를 논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영화로, 일종의 '클래식' 대열에 포함시켜도 무방한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탄탄한 입지를 다진 작품인 만큼 재해석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30여 년에 걸쳐 충성도를 보인 팬층이 여전히 건재한 만큼 재해석을 통해 이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경우처럼 인지도가 확보된 데 비해 실제로 작품을 접한 관객이 많지 않다면 좀 더 자유로운 해석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원작 훼손에 극히 예민한 팬들 앞에서는 당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영웅본색' 리메이크 버전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잘해 봐야 본전'이란 부정적인 말을 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영웅본색4'는 중화권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본전도 못 건진 셈이다.
홍콩 누아르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던 당시 현지인들이 느끼고 있던 허무함과 불안감을 녹여낸 장르였다. 젊은이들의 방황과 심적 갈등을 그리거나 주로 남자들 간의 의리를 강조한 '브로맨스' 영화가 많았다. 범죄조직의 일원이나 킬러 등을 등장시켜 그들 삶의 공허한 이면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장르의 틀을 만들어낸 사람이 영화감독 오우삼이고 그 대표작이 '영웅본색'이었다.
"갱단의 중간보스가 조직 내 음모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고, 마침 경찰이 된 동생은 형의 실체를 알게 된 후부터 증오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감옥에 간 중간보스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조직 내 '절친'은 자신들을 음모에 빠트린 배신자를 처단하고 한몫을 챙겨 홍콩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이처럼 '영웅본색'의 내러티브는 굉장히 단순하다. 그럼에도 '영웅본색'의 단순한 전개는 꽤나 몰입도가 강했다. 오우삼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세 명의 남자 주연배우들이 만들어낸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인상 때문이다. 마치 잘 짜인 안무를 보여주는 듯 유려하게 흘러가는 총격 신은 오우삼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라 당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남자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주윤발의 박력 넘치는 몸짓, 모성 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곱상한 외모로 과격한 액션을 소화했던 장국영, 무게중심을 잡으며 가족애와 의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멋지게 표현해낸 적룡 등 배우들의 활약 역시 '대체 불가'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영웅본색2'의 기획이 진행될 당시 오우삼 감독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부분 중 하나가 주윤발-장국영-적룡 세 배우의 조합이었다. 세 배우가 모두 돌아오지 않으면 '영웅본색2'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오우삼 감독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1편에서 죽은 주윤발 캐릭터를 되살리기 위해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설정을 가져왔고 2편 역시 공전의 히트를 치며 1편에 이어 '홍콩 누아르의 전설'이란 수식어를 듣게 됐다.
'영웅본색4'에 출연한 배우들도 현재 중화권 최고 스타들로 구성해 눈길을 끌었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됐던 원작 출연자들의 강한 이미지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현대적인 느낌을 반영하기 위해 옷차림도 젊은 느낌으로 바꿨는데 그래서 트렌치코트 차림의 주윤발이 보여주던 묵직한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갱 영화'에서 '뒷골목 깡패 영화'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나마 극 중 흘러나오는 장국영의 '당년정', 그리고 대놓고 등장하는 주윤발과 장국영의 사진 등 원작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주가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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