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불리는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기술 선진국 기업들을 잇따라 거꾸러뜨리며 세계적 기업이 됐다. 하지만 삼성도,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도, 진짜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꼭 80년 전인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연 호암은 창업 1년 만에 조선양조를 인수했고 대구 최고 고액납세자가 됐다. 해방 직후 대구를 방문한 이승만 박사를 대구 유지 자격으로 처음 만났던 호암은 서울에서 한 번 더 이 박사를 만난 뒤 서울행을 결심, 1947년 5월 대구의 사업체는 모두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서울로 사업 근거지를 옮겼다. 그리고 1948년 무역업체인 삼성물산공사를 열었다. 서울행 2년 만에 국내 무역업체 중 순이익 규모 1위가 됐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졌다. 창고 물건은 약탈됐고, 6'25전쟁 발발 직전 구입한 쉐보레 자동차는 남로당위원장인 박헌영의 차지가 됐다. 알거지가 됐다. 인민군 치하 서울시내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 숨어 살던 호암은 인천상륙작전 직후 서울 수복이 이뤄지면서 천신만고 끝에 피란길에 올랐다.
기댈 곳은 대구뿐. 대구 사업체를 맡겨놨던 전문 경영인들에게 잠시 신세를 지려 했던 호암은 정직한 전문 경영인들 덕분에 사내 유보금 3억원을 건네받았다. 1951년, 이 돈을 들고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다시 세우면서 호암은 재기했다.
호암과 같은 최고 부자의 부(富)조차 한 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전쟁 공포 해소를 위해 끊임없이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헛방망이질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첫 대화가 이뤄졌던 1971년 이후 지난달 정상회담 직전까지, 무려 657차례의 공식 만남을 가졌지만 결과는 빈 수레였다.
그런데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나타났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6'25전쟁의 종전(終戰) 선언을 한다는 합의를 했다. "(무력 사용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칼 마르크스는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고 했다. 바로 이 사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쟁 없는 한반도라는 새 역사를 만들까? 그의 속내는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제(美製) 현미경으로 검증될 것이다. 개봉박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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