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고장인의 삶을 바꾼 그 순간] 백영목 동신전통문연구원 대표

"경험 없던 사찰 방문 '할 수 있다' 큰소리"

"하면 되죠.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그게 도전정신 아닐까요."

백영목(66'사진) 동신전통문연구원 대표는 창호 제작에서는 내로라하는, 경북도 최고장인이다. 전통 사찰의 방문을 만드는 데 30여 년을 쏟았다. 사찰의 문을 만들게 된 계기가 제법 호기 넘쳤다. 때는 1985년 즈음. 예천 용궁면 장안사 법진 스님은 그에게 "할 수 있겠냐"고 수차례 되물었다. 과제는 대웅전 꽃살문이었다. 고향인 김천 직지사에서 부친과 함께 요사채 방문을 짠 게 경력의 전부였지만 평소 그가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봐왔던 법진 스님은 시험을 해보듯 그에게 물었던 것이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은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었다.

기한은 사흘이었다. 전국 유명 사찰의 꽃살문을 보러 다녔다. 눈으로만 담을 수 없어 순천 송광사에서는 먹지로 본을 뜨다 혼쭐이 나기도 했다. 밤이면 천장에 꽃살무늬를 수백 차례 그렸다 지웠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자 자신감이 사라져갔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정설로 다가왔다. 그때 스스로에게 건 주문은 '오늘은 연습이다'였다. 평소 하던 대로 하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나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의 삶이 바뀐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법진 스님이 정말 고마운 분이다. 믿고 맡겨주신 것 같다."

실제 그의 첫 10년은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니었다. 일반 가정집 방문을 짜는 정도에 그쳤다고 했다. 다만 배워 익힌 걸 변형시켜 새롭게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노라고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이죠. 부친께서 목수셨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부터 시작했어요. 1972년이죠. 일하던 사람들이 자주 빠지고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제가 일을 돕겠다고 나섰죠. 등하굣길에 어깨너머로 배운 걸 직접 해보겠다고 한 거였죠."

만약 예천 장안사에서 실패했었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실패를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을 믿고 밀어붙였다고 했다.

"최고장인이라고 받긴 받았는데 현재 있는 곳도 목공소고, 하는 일도 목수죠. 다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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