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군위성결교회를 찾았다 깜짝 놀란 것은 군위성결교회 건물 때문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본 20분간 그저 "신기하고 놀랍다"는 말밖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런 작은 시골 읍 단위에 이렇게 여러 종교의 건축물들이 한 데 모여 있다니.
장로교회, 성결교회, 천주교회가 담벼락도 있는 둥 없는 둥 한집처럼 연결돼 있었고 지척에 향교와 유림회관이, 또 가까이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일명 통일교회당과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옛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건물까지 몰려 있었다. 가히 종교타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게다가 김수환 추기경 생가는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다. 국내 최초 종교타운이라 자랑하는 안동 종교타운보다 많은 종교 건축물이 몰린 곳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이곳은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단지 종교시설이 많아, 시골 읍내라 평화로운 게 아니었다. 이곳 주민들이 인근 간주막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성당과 향교 사이로 연결돼 있었다. 향교, 교회, 성당을 지나 마음을 다스리며 몸을 치유하는 경로로 보였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곳의 입지였다. 속칭 부동산업자들이 말하는 목이 좋은 곳이었다. 군위읍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자리 잡은 터였다. 조선의 통치이념을 새겨놓은 향교보다도 높은 곳에 있어 요상하기까지 했다. 향교 주변은 옛 관아가 있던 곳이라 행정의 중심이기도 했건만 어떻게 성당과 교회가 그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것인지 이해하지 쉽잖은 대목이었다.
이와 관련해 솔깃한 견해가 있다. '맥(脈)'을 근거로 한 설명이다. 조선시대 향교마저 맥은 피했다. 맥이 잘 흘러야 온 마을이 편안하기 때문이었다. 일제가 우리의 맥 곳곳을 끊으려 대못질을 한 이유였다. 그런데 군위성당과 옛 군위성결교회가 그 맥 위에 지어졌다는 것이다. 의성 탑산에서 흐르는 맥이라 아무도 이곳에 건물을 올리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 유림의 힘이 약해졌을 무렵 성당과 교회를 읍내가 잘 보이는 곳에 세웠을 거란 짐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초기 교회들이 지금과 같은 명당자리에 들어서기란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이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언덕 위 잘 보이는 십자가는 교인들을 인도했고 옛 군위성결교회는 천황 참배 거부 등 일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숱한 탄압에 골병이 들었다. 허병국 군위성결교회 목사는 "옛 군위성결교회는 한국 기독교 역사 성지로 꼽혔지만 이제는 항일운동의 현장으로도 알려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예수재림신앙과 애국사상을 전파하는 것으로 모자라 찬송가를 조선말로 합창했으니 일제에 대놓고 항거한 셈이었다.
1937년생인 옛 군위성결교회는 잠시 창고 용도로 쓰이고 있는 듯했다. 80년 된 건물치고 건물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어 다행스러웠다. 그간의 근대문화유산들은 프랑스 생물학자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철저히 입증하고 있었다. 건물로서 용도가 사라진 곳은 어김없이 부식돼갔고 거미줄 지지대 정도로 전락해 있었기에 옛 군위성결교회의 번듯한 활용은 반갑기까지 했다. 그 때문인지 실제 문화재청도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사용을 제한하지는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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