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주 출신이다. 어릴 때 기억으로 이영식목사가 있다. 일제 때는 독립운동가였고 해방 후에는 장애인 특수학교와 대학을 설립했다. 대구대학교였다. 특수교육의 아버지기도 하다.
장남인 이태영 총장까지 쓰러진 뒤 대구대학교가 분규에 빠졌다. 결국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1994년 2월이었다. 17년이 지난 2011년, 임시이사회에서 정이사회로 전환되면서 첫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 때 총장이 홍덕률 후보였다. 그렇게 나와 홍 총장은 재단 이사장과 총장으로 만났다.
재단 정상화 과정은 험난했다. 설립자의 일부 유족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홍 총장과 나를 공격했다. 설립자의 장손이자 자신의 형제에게도 그랬다. 대학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홍 총장이 감당한 고난은 상상을 넘었다. 교육부와 청와대 앞은 물론이고 아파트 앞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유력 일간지의 대형 광고를 통해서도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당했다. 고소 고발도 수없이 당했다. 그 때 힘들어 하던 홍 총장의 표정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홍 총장은 그 모진 시련과 고초를 이겨냈다. 대학도 위기에서 구했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수들의 교권도 지켰다. 홍 총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홍 총장은 첫째,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시련이 따라도 정의와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다. 둘째, 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참교육자다. 재단분규로 인해 학생들이 피해를 입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늘 감동이었다. 셋째, 훌륭한 인격자다. 군림하거나 대접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소탈하다. 항상 낮은 자세로 듣고 배려한다.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는 드문 지도자다. 넷째, 매우 합리적이다. 공사 구분도 분명하다. 개인 이익이나 인연을 앞세워 결정하지 않는다.
그런 홍 총장이 대구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 내게는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나섰다. 홍 후보에게 도움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교육은 홍 후보같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대구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본 홍 후보는 넘치는 대구 사람이다. 대구에 와 대구의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30년이 넘었다. 늘 대구를 걱정하는 모습을 봤다. 까다로운 교수들로부터 두번이나 직선총장으로 선택되었다. 대구의 학생들과 대구를 위해서 홍 후보가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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