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상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면 보여드릴 훈장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배병해(69) 씨는 얼굴을 찡그리며 어렵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하다는 그였지만 46년 전 베트남에서 겪었던 그 날의 전투는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올렸다. 배 씨는 "당시 전투에서 공을 세워 표창은 받았지만 지금까지 훈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배 씨는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72년 1월 27일 파병됐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안케패스 작전에 투입됐다. 안케패스 작전은 1972년 4월 1일부터 25일 간 베트남 퀴논시와 캄보디아 국경에 이르는 19번 도로의 요충지 안케통로를 탈환하는 작전이었다.

배 씨가 소속된 맹호 26연대는 맹렬한 공세 끝에 638고지를 탈환, 도로를 다시 열었다. 당시 한국군 전사자는 75명, 부상자는 109명이었고, 북베트남군은 705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였다.
배 씨는 638고지에 태극기를 꽂았지만 전투 과정에서 오른쪽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총소리와 함성, 고지에 올라 태극기를 꽂으라는 상관의 명령이 뒤섞인 아비규환이었다"면서 "팔에 총을 맞고 의무대로 실려가는 동안에도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부상을 입은 배 씨는 106후송병원에 입원했다. 다행히 팔을 절단하진 않았지만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다. 3개월 뒤 퇴원하는 배 씨는 그 해 8월 4일 표창을 받았지만 바로 훈장을 요청했다고 했다. 배 씨는 "상황이 어수선하니 기다리라는 상관의 말을 믿고 마냥 기다렸다"면서 "귀국 후에도 훈장 수여를 문의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고 그렇게 46년이 흘렀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배 씨는 1973년 2월 12일 귀국해 39사단에서 복무를 이어갔고, 그 해 12월 20일 만기제대했다. 그러나 삶은 고달팠다. 부상을 입은 팔은 제 힘을 쓰지 못했지만 홀어머니와 동생 네 명을 보살피려 지게꾼과 화물차, 굴착기 운전 등 안해본 일이 없다. 배 씨는 지난 4월에도 육군본부에 훈장 수여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관계자는 "전공은 훈장수여 대상이지만 베트남전 훈장수여자의 비율은 7%정도로 모두가 다 받는 것은 아니다"며 "전투공적은 표창으로 완료됐고, 훈장 수훈 추천 등의 기록이 아예 없는 상황이어서 훈장 수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배 씨는 "변변찮게 살아왔지만 저승에 가서 부모님 앞에서 '살아서 그래도 이런 좋은 일도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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