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신 한메이링(가명·26) 씨의 머리카락은 모두 빠져있었다. 독한 항암화학요법의 후유증이다. 난소암 3기로 네 번째 항암화학요법 치료를 받는다는 한 씨의 얼굴에 피로와 긴장이 묻어났다. 그 때, 생후 6개월 된 아들 수호군이 칭얼거렸다. 보채던 아이는 엄마 품에 안기자 이내 해맑게 웃었다. 덩달아 한 씨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수호군은 난소암으로 투병 중이던 한 씨가 수술을 미뤄가며 지킨 아이다.
◆임신 5개월 때 난소암 3기 판정, 아이 지키려 수술 미뤄
한 씨와 남편 권진혁(가명·38) 씨는 지난해 4월 국제결혼업체를 통해 결혼에 골인했다. 자녀 욕심이 많았던 권 씨는 아내의 이른 임신에 뛸 듯이 기뻐했지만 기대는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임신 5개월 때 입덧으로 중국 친정에 돌아갔던 아내가 현지에서 난소암 진단을 받은 것.
아기를 지키려면 종양 절제수술을 할 수 없었고 임신 35주차였던 지난 1월에야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했다. 아기는 체중 2.45㎏ 정도였지만 비교적 건강해 인큐베이터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한 씨는 잠시 회복기를 거쳐 지난 3월 난소 전체와 대장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3주 간격으로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있다. 의료진은 앞으로 2년 간 재발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아픈 딸 걱정에 중국에서 농사를 짓던 친정 부모는 다급하게 한국으로 왔다. 아이의 외조부모는 온종일 딸과 손자를 돌보고 살림을 챙긴다. 한 씨는 "병원에서 하루 종일 항암제 주사를 맞고 오면 적어도 1주일은 기력이 없어 앓아 눕는다. 부모님이 아기를 돌봐주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의사소통 어렵고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애틋하게 보듬는 가족
권 씨 가족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다름 아닌 의사소통이다. 한 씨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한국어만 할 줄 알고, 중국인 부모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권 씨는 "아내에게는 유치원생에게 말하듯이 풀고 풀어서 얘기를 한다. 급하고 중요한 얘기는 다문화가정 지원기관에 도움을 청하지만 평소엔 주로 인터넷 번역기를 쓴다. 의미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해가 생긴다고 느끼는 때가 많다"고 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크다. 권 씨의 장인 장모는 딸 뿐만 아니라 사위도 살뜰하게 챙긴다. 권 씨가 일용직으로 일할 때에는 장모가 오전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줄 정도였다. 권 씨는 "좁은 집에 장인·장모님이 함께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주려고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게 느껴진다. 집 안도 늘 깨끗하게 치워주고 퇴근이 늦어져도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기다려 주신다"고 했다.
아내 한 씨 역시 남편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한 씨는 "가족들이 모두 중국 사람이라 음식도 중국 음식이고 남편 혼자 힘들 것 같다. 한국요리를 빨리 배워서 남편에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애틋한 가족 간의 정에 비해 경제적 사정은 팍팍하다. 권 씨가 주택 보증금으로 모아 둔 2천만원은 한 씨의 수술비와 항암치료비로 모두 사용했다. 현재는 지은 지 40년이 된 이종사촌 동생 소유의 낡은 아파트에서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원만 내며 임시로 지내고 있다.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며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벌던 권 씨는 지난달 한 기계공장에서 판금공 자리를 구했다. 소득은 전보다 조금 늘었지만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임시직이라 불안하다. 다섯 식구를 부양하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권 씨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쌓인 피로를 풀 여유는 없지만 권 씨는 가족들을 보며 힘을 낸다고 했다. "고된 노동 후 퇴근해도 아들을 보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이제 아내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순 없겠지만 아프지 말고 하나 뿐인 아들을 함께 잘 키울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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