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최후의 방어선

이원수 대구산업학교 상담교사

이원수 대구산업학교 교사
이원수 대구산업학교 상담교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휴전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국군은 대구까지 밀려 영천을 내어주고 경주시 안강읍으로 후퇴했다. 안강서 밀리면 경주, 울산, 부산까지 내어줄 상황이었다. 이때 맥아더 장군이 지도를 펴놓고 9월 15일, 성공 확률 5천 대 1의 도박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을 생각해 냈다. 준비 기간으로 2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급해진 미 8군 워커 사령관은 7월 29일 “죽음으로 안강을 사수하라”며 최후의 방어선을 설정하고 자신이 선두에 서서 지휘했다. 안강서 국군 수도사단과 북한군 12사단이 서로 진격이냐, 방어냐로 공방전이 이루어졌다. 학생까지 전투에 참여한 국군은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사투하여 시간을 벌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다. 지나간 역사에서 이만한 최후의 방어선이 있었을까?

60년이 지난 현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국의 트럼프는 ‘자국 우선주의’에, 중국의 시진핑은 ‘굴기’에, 일본의 아베는 ‘전쟁 가능한 국가’에, 한국은 ‘평화통일’에, 북한은 ‘핵 개발’에 최후의 방어선을 설정하고 대치하고 있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다가오는 미래에 북한이 겁을 먹었는지 최후의 방어선을 핵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바꾸니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얼마 전 판문점 선언은 6·25전쟁 이후 경쟁에서 우리에게 져서 이제는 혼자 일어설 수 없으니 도와 달라는 뜻이 아닐까?

우리가 6·25전쟁 이후, 다시 한 번 최후의 방어선을 설정한다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각자 삶의 영역에서 본다면 모두 다를 것이다. 필자는 ‘내가 배부르면 남도 배부르겠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제시하고 싶다. 자기 생각이 모두 맞다고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고집(固執)은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과는 먹다가 맛이 없으면 버리면 되지만 인간은 맛이 없다고 버릴 수가 없다. ‘맛’있는 사과의 ‘맛’에 해당하는 것이 ‘인간미(美)’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은 최초로 보고 들은 경험이 행동의 기준이 된다. 가정이 출발점이다.

필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시 양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꿇어앉아서 500년 동안 대대로 내려온 선비정신의 가정교육을 받았다. ‘잘못이 있으면 변명하지 말고 시인(是認)하라.’ 그래도 용서해 주지 않으면 꿇어앉아서 두 손을 들고서라도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시키라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양동의 혼(魂)으로 ‘자신이 배부르면 남도 배부르겠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끝으로 ‘위로는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보아, 한 점 부끄럼 없는 행동을 하자!’가 교육 철학이다. 그래서 구차하게 제자에게 변명하지 않았다. 나도 인간이니 잘못할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었다. 31년째다. 필자의 최후의 방어선은 무릎을 꿇어서라도 제자들이 친구를 괴롭혀서 희열(喜悅)을 얻는 호르몬이 나오는 샘터를 마르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최후의 방어선을 사수(死守)하도록 도와주신 학부모님이 정말로 감사할 뿐이다.

이원수 대구산업학교 진로진학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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