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방학 맞은 가정 스마트폰과의 전쟁] 멘토·또래와 스킨십 11박 12일 "폰질 유혹, 인젠 뚝"

[르포] 대구시 기숙형 치유프로그램…합숙하며 과의존 치유, "유튜브 없이도 놀 수 있어요"
캠프에 자녀 보낸 부모들 "희망 발견, 활달해진 자녀 보고 안도"

지난달 25일 오후 2시 청소년 스마트폰 치유캠프에 참가한 대구 청소년들이 카프라 활동을 하면서 인터넷·스마트폰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카프라는 나무원목을 활용해서 원하는 형체를 만드는 게임을 이른다. 대구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제공
지난달 25일 오후 2시 청소년 스마트폰 치유캠프에 참가한 대구 청소년들이 카프라 활동을 하면서 인터넷·스마트폰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카프라는 나무원목을 활용해서 원하는 형체를 만드는 게임을 이른다. 대구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제공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중독은 부모의 제지나 자녀의 노력만으로 벗어나긴 쉽지 않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아도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놀거리와 흥미거리가 있어야 하고, 부모의 양육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서다. 따라서 체계적인 예방·치유프로그램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있다면 한결 수월하게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구시가 2009년부터 운영 중인 기숙형 치유프로그램이 부모와 청소년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다. 올해도 이 프로그램에는 참가 정원인 25명보다 9명 많은 34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이곳에서는 11박 12일동안 함께 머물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흥미와 적성을 찾도록 도와준다.

◆ 스마트폰 치유캠프 '스마트폰 탈출 넘버원'

2일 오후 7시 대구 달서구 송현동 대구청소년수련원. 대구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치유캠프인 '스마트폰 탈출 넘버원' 캠프의 마지막 날 순서로 '나눔의 무대'가 한창이었다. 캠프에 참가한 중학생 25명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모두 캠프 첫날에 만들었던 에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직접 앞산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나뭇잎과 풀로 만든 티셔츠다.

무대에 오른 한 학생이 컵 2개를 탁자 위에 부딪히거나 박수를 쳐서 경쾌한 소리를 만드는 컵타 공연을 펼쳤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 레크댄스 무대가 이어지자 객석의 친구들과 멘토들이 야광봉을 흔들면서 열렬히 응원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즐거워 했다. 무대 밖에서도 춤을 추거나 발을 구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자녀의 솜씨를 지켜보는 부모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렀다. 어머니들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응원과 함성을 아끼지 않았고, 처음에 어색해하던 아버지들도 어깨를 흔들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박선종(44)씨는 "조카를 보러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준비한 것 같다"며 "한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치유캠프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 형성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중점을 둔다. 참가자들은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대학생 멘토 한 명이 참가학생 2, 3명을 맡아 함께 먹고 자며 지도하는 게 특징. 클라이밍과 플로어볼, 컵타, 캐리커처, 에코 티셔츠 만들기 등 20여 개의 활동과 함께 개인 및 집단, 가족 상담 등도 이어진다. 수상스포츠와 영화 관람, 서문야시장 투어 등 흥밋거리도 적지 않다. 치유캠프가 끝난 후에도 3개월 간 지속적으로 전문 상담사가 찾아가는 상담도 진행한다.

지난달 2일 청소년 스마트폰 치유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한 채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대구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제공
지난달 2일 청소년 스마트폰 치유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멀리한 채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대구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제공

◆ 또래들과 지내며 자제력 배우는 아이들

참가 학생들은 "이제 인터넷 게임이나 유튜브 없이도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치유캠프에서 만난 김현근(14) 군은 "캠프 오기 전에는 매일 바뀌는 게임아이템을 받지 못하는게 견디기 어려웠는데, 막상 여기서 친구들과 재밌게 지내다보니 게임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일에는 평균 3시간, 주말에는 7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는 이도형(14) 군은 "멘토 선생님들이 장난도 잘 치고 친구들과도 재밌는 시간을 보내서 게임이나 동영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2시간 줄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치유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처음부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단절된 생활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멘토로 활동한 정진환(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1학년) 씨는 "처음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PC방 가고 싶다', '유튜브 보고싶다'고 투덜거렸다"며 "처음에는 말없이 엎드려 있던 친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인사를 하거나 활발하게 어울리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개인·가족 상담을 진행한 시정현(55) 상담사는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같이 지내면서 서로 보고 배우고 반성하는 것도 긍정적인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업을 완전히 놓고 PC게임만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직 자신 없지만 나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친구들도 게임을 좋아하지만 나처럼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더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변화하고 싶어 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치유캠프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은 이제 희망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모(51) 씨 부부는 "아들(14)은 식사와 학원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집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만 가지고 놀았다"면서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는데 아이가 예전보다 활달해졌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안도했다"고 말했다.

전모(53) 씨는 "부친의 간병 때문에 수년 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이 스마트폰 중독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자책했다.

전 씨는 "아이와 떨어져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스마트폰을 하더라도 위험한 바깥보다는 차라리 집에 있는게 낫겠다고 잘못 생각했다"면서 "아이가 점점 말과 행동이 거칠어졌고, 주말에는 10시간 이상 게임에 매달렸다. 특히 아이가 엄마에게 욕설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이번 치유캠프를 계기로 부모와 아이 모두 달라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유모(45) 씨도 "스마트폰 중독 예방차 캠프를 권유했는데 자제력도 배우고 다양한 체험과 친구를 사귀어서 좋다고 한다.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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