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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우리민족' 감성팔이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8세기부터 민족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민족'은 국가 건립과 국민 단결을 이끄는 구심체로 작용했지만, 타민족의 배제와 억압, 타민족국가에 대한 침략의 도구로도 악용됐다. '민족'과 '민족주의'의 이런 부정적 쓰임새를 누구보다 잘 간파한 독재자가 히틀러다. 히틀러는 1차 대전 후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를 영토 확장의 수단으로 써먹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효용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독일인들의 민족 감정은 그들을 자신이 계획한 '종족 투쟁'으로 몰아갈 수 있는 힘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유럽 각국에 산재하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해당 국가가 수용하기 어려운 '완전한 자치'를 요구하도록 부추겨, 그 국가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이다. 히틀러는 점령의 첫 단계로 독일 국경과 맞닿은 체코슬로바키아 서쪽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독일인 300만 명의 '자기 결정권'을 요구했다. 이 지역을 독일에 할양하라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베르사유조약 상의 자기 결정권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날강도나 다름없는 이런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히틀러는 역사도 만들어냈다. 히틀러가 할양을 요구한 지역의 이름은 '주데텐란트'인데 히틀러가 고안해낸 것이다. 그 목적은 이 지역이 오랜 세월에 걸쳐 '독일적 정체성'을 유지해왔으며, 독일 영토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억지 주장의 합리화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도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의 구호에 경계할 것을 요구한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정권에 '민족'은 '한반도 적화'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민족'이 자아내는 감성적 흥분에 도취되는 것은 '민족'을 내세운 북한의 대남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비핵화보다 경제협력 등 남북관계 개선에 더 강조점을 두며 "우리 민족 모두가 잘사는 날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 논리와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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