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남산동 대도극장 무대에서 까까머리 고등학생 한사람이 좋아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대건 고등학교 3학년 정태호였다. 그는 대구의 레코드사인 오리엔트가 주최한 신인가수 콩쿠르에 나가 '로맨스 항구'라는 노래를 불러 특등(대상)이라는 발표가 났기 때문이다. 그 후 서울로 올라가 작곡가 이병주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노래 지도를 받는다.
59년 남일해라는 예명으로 '비 내리는 부두'로 정식가수 데뷔를 하게 된다. 그는 중앙국민학교를 나와 손시향의 선배가 되며 대건중고등을 졸업한 가요의 영재였다. 당시 레코드 회사들은 신인가수를 발굴하는 방법으로 콩쿠르를 많이 이용했다. 오리엔트 레코드사는 51년에는 대구극장 콩쿠르에서 개성고등 3학년이었던 도미와 방운아를 발굴하여 중견가수로 성장시킨 가요계의 주요 사업체였다.
가요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우리 땅에 들어 온 후 대구경북은 많은 가수들을 배출했다. 대봉동 태생으로 35년에 등장한 장옥조가 최초의 대구경북 출신 가요가수이다. 그녀의 대표적 노래는 38년에 녹음된 '신접살이 풍경'이다. 이어 등장하는 초창기 가수로는 39년 남인수, 현인과 함께 한국가요의 3대 거성으로 추앙받는 성주출신 백년설, 42년 김천출신 나화랑, 46년 강남달, 47년 고화성과 '전선야곡'으로 유명한 영남고등 출신 신세영이 있었다. 53년에는 '마음은 자유천지', '경상도 사나이', '인생은 나그네'를 부른 경산 출신 방운아, 56년에는 도미가 등장하여 경쾌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청포도 사랑'과 '하이킹의 노래'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경북고등과 서울대학을 졸업한 손시향은 1958년 서양식 발라드풍인'이별의 종착역'과 '검은 장갑'을 불러 가요 팬들에게 한국의 팻분이라는 칭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60년대로 들어서며 샹송가수인 곽순옥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불러 동명의 영화까지 나오게 하며 민족의 비극을 애절하게 표현하였다. 이 무렵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는 한국의 '후랑크 나가이'라고 불리던 매력의 저음 천재 남일해이다. 61년 '이정표'를 불러 7만여장의 음반판매의 기록을 세운다. 잇달아 대박을 기록한 노래는 '빨간 구두 아가씨'이다. 70년 대에는 대륜고등 출신 여운이 '과거는 흘러갔다'로 유명세를 얻는다. 같은 무렵 시각장애인이면서도 항상 유머러스라고 명랑한 이용복이 한국의 레이찰스라는 칭찬을 들으며 그' 얼굴에 햇살', '줄리아', '어린 시절'을 불러 대구출신들을 또 한번 유명하게 만든다.
작곡가로는 대성고등학교를 나온 김희갑이 '향수', '킬리만자로의 표범', '꽃 순이를 아시나요?', '진정 난 몰랐네.'를 작곡하여 많은 가수들을 출세시켰다. 그리고 '울려고 내가 왔나?', '여고시절', '내 곁에 있어주', 그'대 변치 않는다면', '마음 약해서', '잊게 해주오', '정든 배'등의 주옥같은 노래를 만든 김영광도 대구출신 작곡가이다. 배호의 삼종숙으로 성광중을 나와 가수로 활약하다가 작곡가 된 배상태는 성주 출생으로 대구서 활약하다 서울로 가서 크게 빛을 보게 된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춘 단 공원', '능금 빛 사랑'등을 작곡하여 배호를 큰 가수로 만든다. 배호노래의 절반 이상이 배상태의 곡이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회복 불가능의 말기 신장염 판정을 받고 집으로 가던 중에 차속에서 배호는 배상태의 품속에서 눈을 감는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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