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곱게 분쇄한 원두를 여과지 위에 소복이 올린다. 뜨거운 물을 목이 긴 주전자로 졸졸졸 부으면 원두가 부풀어 오르며 호흡을 시작한다. 물을 내리는 동안 어느새 커피향으로 가득 찬다. 이처럼 핸드 드립 커피에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살아 있다. 여름 끝자락, 핸드 드립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잠시 잊고 있던 삶의 쉼표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드립 할 때마다 달라지는 예민함과 변화무쌍함"이 매력
대구 시내에서 커피솝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영(49) 씨는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핸드 드립 커피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지영 씨는 "드립 할 때마다 달라지는 예민함과 변화무쌍함"이라고 했다. "물 온도, 콩의 분쇄 굵기, 물을 내리는 속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다른 조건은 모두 같아도 로스팅하는 사람의 손맛이나 컨디션에 따라서도 커피 맛에 미묘한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지영 씨는 평소 커피에 대해 잘 모른다 해도 가게 주인과 대화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했다. "핸드 드립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손님과의 대화가 많이 이뤄진다는 것"이라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손님의 성격과 취향 등을 알 수 있어 그에 맞는 맞춤형 커피를 추천해드린다"고 했다.
지영 씨는 예전에 비해 커피 마시는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점심식사 후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고, 또 누군가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는 등 커피를 즐기는 저마다 다른 모습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영 씨는 오늘도 목이 긴 커피 주전자를 잡는다.
◆이탈리아 요리 맛있게 먹기 위해 커피 시작
대학 때 피아노를 전공한 지영 씨는 졸업 후 이탈리아에서 잠시 살았는데 그곳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다. 귀국 후 집에서 엄마들을 상대로 이탈리아 요리를 가르쳤다.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후식으로 커피를 즐겼다. "이탈리아 요리에는 에스프레소가 필수거든요. 요리의 끝판은 커피거든요."
맛있는 커피가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아 엄마들과 함께 커피를 배우기로 했다. 13년 전의 일이다.
꼬박 2년을 배웠다.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지영 씨는 요리처럼 커피에 빠져들었다. 어느날, 자신이 만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커피를 왜 일찍 시작하지 않았지'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대구 시내에 커피숍을 차렸다. 커피를 내리고 또 내렸다. 재료가 같더라도 누가 내리는가에 따라 커피 맛과 향이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영 씨는 드립을 할 때 정자세로 한다. 피아노를 칠 때 배어 있는 습관이다. "손님에게 주는 만큼 공손한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자세가 바르면 정성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또 정직한 맛이 나온다"며 활짝 웃었다.
◆핸드 드립
지영 씨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면 커피 주전자로 물줄기를 조절하면서 세심하게 추출해야 하므로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물을 떨어뜨리면서 성분을 추출하는 과정에 퍼져 나오는 은은한 커피 향을 맡는 즐거움도 있고요."
커피주전자에 원하는 온도의 물을 담아 원하는 물줄기 굵기로 달팽이 모양(다양한 드립 방식 중의 하나)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때, 붓는 물 양을 생각해 물줄기 굵기와 붓는 속도를 조절하고 물과 접촉하는 시간을 생각해 붓는 횟수를 결정하고 중간중간에 기다리는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다"고 했다.
커피를 내릴 때 여과지는 페이퍼와 융(천)을 사용한다. 종이필터는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뚫려져 있다. 융필터보다 구멍 크기가 더 작아 추출물에는 통과되지 않는 커피성분도 있다. "종이필터에서 걸러지므로 추출결과물인 용액은 깔끔한 특징이 있고, 반면, 융필터는 종이필터에 비해 구멍이 커 더욱 풍성하고 묵직한 맛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줄기를 조절하며 물을 떨어뜨리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다고 했다. "한 방울씩 물을 떨어뜨리며 추출하는 점드립, 꽃 모양을 그리듯이 물줄기를 드리우는 꽃모양 드립, 동전크기 만큼만 달팽이를 그리듯이 둥글게 드리우는 동전드립 등 그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며
"드립 기술에 따라 추출 결과물의 향미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여 숙달해야 한다. 꾸준한 연습만이 '답'"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어"
지영 씨는 요즘 몸이 좋지 않아 커피를 자주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는 진하게 내려 마시고,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우유 거품이 나는 카푸치노를 마신다. 마시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가장 맛있는 커피에 대해 묻자 "커피한다고 하는 사람치고 타협하는 사람이 없다. 주관적이지만 가장 맛있는 커피는 맛과 향이 좋고 목넘김이 좋은 커피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요리를 먹은 뒤 디저트와 함께 먹는 커피"라면서 "커피는 혼자서도 맛있지만 함께하면 더 맛있다"고 했다.
지영 씨는 요즘도 맛있는 커피를 찾아 전국을 여행한다. "나를 가장 속상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지만 가장 행복하게도 하는 게 커피"라고 했다.
(박스) ◆좋은 커피 조건은?
크게 생두, 로스팅, 그라인딩, 추출 등 4가지다.
좋은 커피의 기본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생두다. 생두는 시간이 지나면 맛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번째는 로스팅이다. 로스팅은 생두를 볶아내는 과정을 말한다. 시간과 온도의 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심하게 작업해야 한다. 오래 볶을수록 생두는 무게가 감소하고 부피는 증가한다. 더불어 색깔은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볶을 때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로스팅 과정에서 다양한 성분들이 생성되고, 이 단계에서 커피의 맛과 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맛을 내고자 할 때는 로스티와 냉각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 커피의 풍미가 좋아지게 된다.
세 번째는 원두를 분쇄하는 그라인딩 과정이다. 표면적을 넓혀 추출이 잘 되게 하는 것이다. 추출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하면 좀더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은 추출이다. 최근에는 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통해 추출한다. 고압을 통해 추출되는 방식이다. 빠른 추출을 통해 신속하게 커피의 맛을 제대로 살리는 대중적인 방법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계에 의한 추출 방법 외에도 약재를 다리는 것과 같은 이브릭, 커피를 물에 잠기게 하는 프렌치 프레스, 여과지를 두고 주전자로 내리는 핸드드립과 같은 추출 방식도 있다.
박지영 씨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커피 맛을 내는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다"면서, "바리스타의 기술과 노하우가 커피의 풍미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원두를 구별할 수 있는 노하우와 남다른 로스팅 기술을 갖고 있는 바리스타가 있는 매장에 손님이 몰려드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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