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누구나 아는 사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중앙계획경제 체제였던 구소련에서 정부가 결정해야 할 가격의 종류는 2천400만 가지가 넘었다.(오기(誤記)가 아니다! 2천400도 아니고 240만도 아닌 2천400만 가지다) 새로 놓을 다리를 1차선으로 해야 할지 2차선으로 해야 할지는 물론이고 모스크바 어느 구역에서 채소를 길러야 하느냐는 아주 사소한 사항까지도 정부가 결정했다.

이는 가격 결정자들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초인적 능력을 요구했다. 스탈린이 과중한 업무에 지쳐 한 번은 참모들에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쌓여가는 서류 더미에 파묻힐 지경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 가격이 오류 없이 정확하게 책정됐느냐 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결정한 가격은 무엇을 더 많이 생산하거나 더 적게 생산할지를 판단케 하는 '화폐가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어떤 품목은 지나치게 많이, 어떤 품목은 지나치게 적게 생산됐던 이유다.

화폐가격이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이는 사인(私人) 간의 자유로운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에서만 형성된다. 소련에는 시장이 없으니 화폐가격도 없었다. 소련 경제가 비효율의 극치였던 까닭이다.

소련은 이런 문제를 '톨카치'라는 불법 기업가들이 형성한 '유사시장'을 눈감아 주는 것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톨카치'는 부족이 예상되는 생산자원을 쌓아두었다가 목표 달성이 힘든 공장 관리자에게 비싼 값으로 팔았다. 결국 소련도 누구나 아는 시장의 효용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하나 너무나 당연해서 식상하기까지 한 소리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진작부터 이런 상식 중의 상식에 투철했다면 우리 경제의 현실은 많이 다를 것이다. 적어도 지금처럼 죽을 쑤고 있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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