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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교황 초청한 김정은의 의도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선출된 다음 달인 1978년 11월 교황청 외교 담당관들에게 자신의 폴란드 방문이 조속히 성사되도록 폴란드 정부와 교섭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교황이 폴란드를 방문해도 문제이고 방문을 거부해도 문제였기 때문이다.

방문을 수락하면 그러잖아도 삐걱거리는 공산체제가 더 큰 위험으로 내몰릴 우려가 있었다. 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당시 소련 KGB(국가보안위원회)가 직감한 것이었다. 당시 KGB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출이 폴란드 공산체제의 붕괴를 넘어 궁극적으로 소련의 해체를 노린 음모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음모를 꾸민 인물로 폴란드 출신으로 카터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역시 폴란드계 미국인인 존 크롤 필라델피아 추기경을 지목했다. 소련다운 음모론적 상상이었지만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체제를 위협할 것이란 판단만큼은 정확했다.

그러니 소련이 요한 바오로 2세의 폴란드 방문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폴란드 공산당 지도자 에드바르트 기에레크에게 경고했다. "내 말 잘 들으시오. 어떤 식으로든 그를 환대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골치 아픈 일만 생길 거요."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교황의 방문을 거부할 수 없었다. 자국 출신 교황에 대한 폴란드 국민의 자부심과 열광에 비춰 거부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기에레크가 이런 사정을 호소하자 브레즈네프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라는 경고와 함께. 이후의 역사는 브레즈네프의 경고대로 공산주의자들의 '후회'로 점철됐다.

북한 김정은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평양으로 초청한다고 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자신을 '정상적 지도자'로 보이려는 의도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방문이 실현되면 이런 의도도 실현될까? 아니면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처럼 '후회'할 일을 만든 꼴이 될까? 그리고 김정은의 메신저로 나선 남한 대통령은 어느 쪽이 되기를 바랄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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