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두 분, 잘하셨습니다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경상도에서는 모든 혼례의 용구(用具)를 남보다 사치하기를 힘써서 가산을 허비하고 제도를 어기는 자가 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5월 12일)

'인륜의 큰일'로 보는 결혼에는 부담이 따랐다. 가진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 역시 한번(?)뿐인 결혼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히 사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조정에서 임금(성종)과 신하(우승지 이경동)가 백성의 사치스러운 결혼 풍토를 두고 이런 걱정까지 했을까.

신하가 '민가에서 다투어 사치와 화려함을 숭상해 이로 인해 혼기를 놓치는 사람도 또한 많다'고 거듭 지적하자, 성종은 '법을 맡은 사람이 스스로 법도를 따르면 법을 두려워하는 관리도 점차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고쳐서, 세월이 쌓이고 오래되면 저절로 규정을 따르게 될 것'이라 훈수했다.

임금의 대책은 그럴 만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검소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사치를 한 탓에 백성들조차 그러했으니 관리들이 모범을 보이면 될 것이라는 왕의 해석을 보면 알 만하다. 말하자면 법으로 막는다고 법을 만들고 맡은 관리는 앞서지 않는데 백성들의 결혼 사치가 없어질 것인가라는 왕의 지적은 알맞다.

혼례의 사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가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를 만들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경험도 조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최고의 결혼식'을 치르고자 하는 부모들의 입장은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이런 결혼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일상화되고 있다. 2012년 여성가족부의 '작은 결혼식' 분위기 조성도 한몫이다.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작은 결혼식'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실속 있고, 소규모의, 당사자 주도' 결혼식에 80% 이상 동조한 까닭일 것이다.
최근 두 사례도 이런 배경의 결과이리라. 한 퇴직 관리는 경북의 고향집 마당에서 두 집안 사람 50명씩 초청, 결혼식을 올렸다. 대구의 큰 기관의 책임자 역시 두 집안의 100명 이내 하객만 모셨다. 지금 두 사람은 '미처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두 분, 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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