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질문을 듣는다. 그중 기억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학창 시절 설교학 교수님은 늘 질문을 하나 던지시면서 명상할 시간을 주시고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당신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하는 질문이다. 나는 늘 원수와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적개심의 본모습은 무엇인가? 나는 사춘기 때 아버지를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원수를 만들어낸다. 내 불안을 없애는 방법,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일 아닐까? 적이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원수를 악마화하면 쉽게 나를 정당화하고 죄책감을 없앨 수 있다.
나는 원수를 갖는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원수가 내 부정적 자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나 역시 누군가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원수상이지만, 진정한 원수를 원수로 볼 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야 의로운 분노를 가질 수 있다.
작년에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피우진 예비역 중령의 군대 시절 일화다. 197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서 25년간 1천300여 시간 비행기록을 세웠다. 왼쪽 유방이 암 판정을 받아 유방 절제 수술을 하면서 헬기 조종사로서 중요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멀쩡한 오른쪽까지 절제했건만 전역 명령이 내려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남성 군인과 똑같이 가슴이 없다는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 상관들은 피 중령에게 예쁜 여군들을 예쁜 옷 입혀서 보내라고 명령했다. 미적거리자 계속 재촉했다. 그러자 여군들을 전투복에 완전군장에 총기까지 휴대시키고 술집으로 출동시켰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나의 군인정신은 나라를 위해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성 군인들이었다."라고 말했다.
박사학위 지도 교수님이 하루는 나에게 "당신의 친구는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학교 동창의 경우 평생을 친밀한 친구로 지낸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당신은 목사니까 당연히 기독교인 친구가 많을 텐데, 그런 친구보다 이론적으로 기독교를 부인하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어 보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다른 무신론적 철학자들도 친구 삼아서, 그 이야기도 듣고, 응답하면서 지내고 있다.
우리 삶에서 친구가 중요하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사람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진리와 멀어지고 사람과 부대낄 때 진리와 가까워진다.
친구는 항상 나에게 유익만 주는 관계는 아니지만, 원수처럼 미워하는 관계가 아닌, 동반자 관계다. 서로 잘 들어주는 관계, 이해하는 관계, 인내하는 관계다. 우리 인생길에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외롭지 않은 인생이다.
친구는 주로 유유상종이지만 원수를 친구로 삼기도 해야 한다. 링컨이 한 정치인과 토론을 벌이면서 몹시 분노했다. 참모들에게 "그는 나의 적이다. 내가 꼭 제거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얼마 후 링컨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와 악수했다. 한 참모가 링컨에게 "대통령님, 그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링컨은 "맞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적을 제거했고 나와 악수한 사람은 이제 내 친구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원수를 친구 삼으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친구 관계를 통해서 사랑, 자비, 인내, 협력, 봉사, 섬김을 발전시킨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원수와 친구 사이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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