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통령 환대받았으니 기업 총수의 굴욕쯤은 괜찮다는 청와대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의 ‘냉면’ 막말 사실을 덮는데 마침내 청와대까지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현재는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한상공회의소와 관련 기업에 확인해보니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지난달 29일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1일 “그 자리에 없어서 말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말을 바꿨다.

결국 당·정·청이 한통속이 돼 평양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리선권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상소리를 한 사실을 없었던 일로 둔갑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애처로움이 저절로 묻어난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에 재확인된 사실을 덮으려 하니 그렇다.

이러니 말이 앞뒤가 맞지 않게 배배 꼬인다. 김 대변인은 “(냉면 막말이) 남쪽의 예법이나 문화와 조금 다르다고 할지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받았던 엄청난 환대를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막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막말이 있었다는 것인가 없었다는 것인가.

“문 대통령이 받은 환대를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다”는 단정은 더욱 기가 막힌다. 문 대통령이 환대를 받았으니 우리 기업 총수들이 받은 ‘모욕’쯤은 문제가 안 된다는 소리다. 그 권위주의가 놀랍다.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들을 대통령의 수하(手下)쯤으로 여기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우리 기업 총수들이 받은 모욕은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얼마나 환대를 받았는지와 상관없는 국민적 굴욕이다. 청와대는 덮으려 할 게 아니라 사실을 인정하고 북한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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