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재벌과 조폭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재벌과 조직폭력배가 닮은 점은?'

10여 년 전 유행한 유머다. '정치권력과 은밀한 뒷거래를 좋아한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교묘하게 털어간다. 사회에 공헌하는 척한다.' 다른 버전도 있다. '세력 확장을 좋아한다. 돈과 폭력성을 함께 갖고 있다. 당한 손해는 반드시 되갚아준다. 치사한 짓을 예사로 한다.'

이제는 재벌의 이미지가 좀 달라졌을까? 올 초 한 인터넷 언론사가 재벌 이미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더니 국민 10명 중 7명이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응답자들은 재벌 이미지로 '정경유착' '부정부패' '노동자 착취' 등을 많이 꼽았다. 한국인이 부정적인 재벌관을 갖게 된 것은 재벌의 자업자득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인 재벌인 삼성의 행태를 보면 그 후진성에 놀라게 된다.

이건희 회장은 2006년과 2008년 '삼성 X파일 사건'과 '삼성 특검' 과정에서 8천억원 사재 출연과 사회공헌을 약속했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사재 출연 논란 자체가 어디론가 실종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2년 전 국회 청문회에서 "부친이 사재 출연 방법과 계획을 세우다가 와병에 들었다"고 답했다. 전후 맥락을 볼 때 애초에 약속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옳다.

며칠 전 논설위원들이 회의 때 대구 자동차 부품업체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다가 재벌 이야기로 이어졌다. 누군가 "재벌은 부품업체, 하청업체가 망하든 말든 뜯어먹는 데에만 골몰한다. 여전히 조폭 같다"고 했다. 다른 논설위원이 농담조로 그 말을 받았다. "둘을 비교하는 건 조폭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조폭은 약간의 의리도 남아 있고, 자기 영역을 지킨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가 이익을 나누는 '협력이익 공유제'를 법제화하기로 했다. 대기업에게 이익을 내놓을 것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를 수긍하는 국민이 많다고 하니 참으로 슬퍼진다. 조폭 취급받는 재벌에게 경제를 떠맡기고 있는 국민이 불쌍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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