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우리가 버린 과거에 미래가 숨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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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벽난로'조상 쓰던 가구

북유럽 가정은 함부로 버리지 않아

우리가 매정하게 과거 지우는 동안

그들은 건강한 전통을 소중히 보존

스웨덴 친구인 폴슨 부인과 덴마크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코펜하겐 역에서 만난 우리는 수수한 종이 포장의 꽃을 한 단 샀다. 그런데 폴슨 부인은 초청해준 부부와 인사하며 그 종이마저 풀어버리고 맨 꽃다발만 건네는 것이 아닌가. "스웨덴에서는 꽃을 선물할 때 포장을 안 하는 편이에요. 최대한 자연 그대로 전하려는 것이겠지요."

부인의 설명에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 꽃밭이 떠올랐다. 학급 당번 날 아침이면 할머니는 화단과 뒤뜰에서 꽃을 골라 들려주셨다. 신문지 안의 목단, 붓꽃, 찔레꽃은 소박하나마 진솔하기 그지없는 멋진 꽃다발이었다.

향수(鄕愁)로 번역되는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그리스 어원으로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되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채워지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다. 지난 일이란 그 자체로 그리운 세계이지만 우리가 버린 과거가 실은 귀한 미래였다는 것은 북유럽에 와서야 깨달았다.

북유럽 가정에 초대받으면 백 년도 넘은 벽난로, 증조모가 쓰던 주전자와 접시, 고조부의 의자, 외할머니의 손뜨개 탁자보와 조각천 방석보 등 오래된 소품과 가구를 쉽게 만난다. 주인은 집을 안내하며 옛날 물건과 가족사를 함께 소개한다. 스웨덴의 가정 폐기물은 99%가 재생·재활용되고 1%만 매립되는 현실, 도처에 중고품 가게를 두고 활성화시킨 소비생활 등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 오랜 관습과 무관하지 않다.

물건만이 아니다. 북유럽의 현재 생활방식은 더더욱 우리 옛 모습을 옮겨놓았다. 추위가 떠나는 봄부터 주말이면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 산딸기와 블루베리를 따고 버섯을 채취한다. 이는 가장 익숙한 그들의 여가 방식인데 많은 이들이 식용식물에 전문가 수준이다.

북유럽의 자연은 사유지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랜 관습법을 거쳐 공식 법으로 인정된 '자연접근권 또는 자연산책권'(Allemansratten) 덕분이다. 상업 목적이 아니면 어디서든 자연의 과실·작물과 꽃을 취할 수 있다. 가옥과 일정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사유지에서도 야영이 가능하며 주인이 이를 거부할 경우 스스로 기관에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여행객이 지켜야 할 자연보호의 규정과 책임은 엄중하다.

개인 주택에서는 텃밭이 없어도 씨앗으로 날아와 마당에 절로 자란 식용식물을 그대로 식재료로 쓰곤 한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집 근처 호수, 강, 바다에서 '수영 혹은 목욕(bathing)'을 일상으로 즐긴다. 집에서부터 수영복에 수건만 걸치고 맨발로 아파트 마당이나 동네 골목을 지나 물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이곳이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2, 3배 많은 나라의 21세기가 맞나,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나 이 모두는 한때 우리의 모습이었다. 색동 조각보, 손 수예품, 옛날 그릇과 가구는 어느 집에서든 낯설지 않았다. 봄이면 뒷산 언덕에서 쑥과 냉이를 캐고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이 실개천에 모여 멱을 감던 풍경은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사유지인 산과 들도 지금만큼 배타적 독점권으로 닫혀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개발과 근대화의 이름으로 과거를 매정하게 지우는 동안 북유럽에서는 건강한 전통과 깨끗한 자연으로 살아남았다. 문명이 자연과 과거를 대체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본주의가 공유와 반대되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쉽게 떠나왔고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에 대한 상실감-이에 더하여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남았다. 전통과 서양화라는 대책 없는 이분법을 넘어 '오래된 미래'라는 창조적 상상력을, 미세먼지에 가려진 푸른 하늘만큼이나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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