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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직업을 가진 젊은 대표를 만나다! (3) 착한브랜딩연구소 정진우 소장

착한브랜딩연구소 정진우 소장
착한브랜딩연구소 정진우 소장

백종원은 말했다. 식당의 성공 비결은 맛이 3이요 분위기가 7이라고. 그렇다면 사진을 찍느냐 마느냐가 가게 선정 기준이 되어버린 지금, 분위기를 브랜딩으로 살짝 바꾸어도 의미는 통하지 않을까. 여기, 맛은 기본이요 감각적인 브랜딩으로 사진 찍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빵장수 단팥빵', '가창 오퐁드부아',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들의 교집합에는 '브랜딩 좀 아는 남자' 정진우가 있다. 브랜딩이란 이야기에 가치를 얹어 감동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를 지난 3일 착한브랜딩연구소에서 만났다.

착한브랜딩연구소 로고
착한브랜딩연구소 로고

▷브랜딩 회사답게 로고가 참 귀엽습니다.

"예전에 조지 버나드 쇼 묘비명을 읽고 크게 감동했어요. 그때 나는 묘비명에 무엇을 남길까 고민하다가 '난 주황색을 좋아했다'가 딱 떠오르더라고요. 그만큼 주황색을 좋아해요. 의자랑 방석, 연필과 휴대폰 케이스, 죄다 주황색이에요. 취향을 담으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로고가 무얼까 고민하다가, 거리에 놓인 주황색 안전 삼각대를 봤어요. 저거다 싶었죠."

착한브랜딩연구소 브랜딩 작품
착한브랜딩연구소 브랜딩 작품 '가창 오퐁드부아'.

▷로고나 브랜딩 탄생 과정이 궁금해요.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최근 칠곡서 유명한 빵집 2호점 브랜딩을 의뢰받았어요. 빵집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본인이 원래는 엄청 사고뭉치였대요. 모난 색종이처럼 뾰족뾰족한. 그러다 우연히 빵을 만났는데, 빵을 만들고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더래요. 빵 때문에 인생이 둥글게 둥글게 변했다 하시더라고요. 그때 '둥글게 둥글게'라는 표현에 딱 꽂혔죠. 'Round round, bravo my life, bravo my bread'라는 브랜딩이 탄생한 순간이에요.

영감은 대개 대화에서 많이 얻어요. 요즘 온라인 브랜딩 회사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얼굴을 맞대고 정서를 교류해야 그 대상에 어울리는 브랜딩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만남을 고집하는 이유예요."

▷여러 작업을 보니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긴 합니다. 타고난 재능인가요 후천적 노력인가요.

"저는 후자에 속해요. 남들보다 감수성이 조금 풍부한 편이지만 감성을 돋우려고 끈질기게 훈련해요. 유명한 광고나 영상, 영화는 백 번 넘게 돌려보고 눈길 가는 장면이나 대사는 꼭 기록해두고 관련 영상까지 다 찾아봐요. 영화를 한 번 보는 사람과 백 번 보는 사람의 감동은 하늘과 땅 차이이지 않을까요. 세심해지고 예리해지면서 감성이 풍부해지고요. 한 가지를 끝까지 후벼 파는 노력이 결국은 천성을 이긴다고, 저는 믿어요. 왜 불광불급이라고도 하잖아요."

착한브랜딩연구소 브랜딩 작품
착한브랜딩연구소 브랜딩 작품 '빵장수 단팥빵'.

▷'감동'이란 말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직원을 위한 감동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고요.

"최근에 퍼스널 브랜딩(자신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열쇳말을 찾아내는 과정)을 했는데, '감성, 감동, 공감' 세 단어가 나왔어요. 모두 감(感)이 들어간 단어라 무척 신기했어요.

'감동 프로젝트'까지는 아니고요. 내년이면 회사 설립 9주년이에요. 3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인데, 직원이 벌써 9명으로 늘었어요. 함께 동고동락한 직원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름휴가 9일+겨울 휴가 5일', '안식월 있는 회사'를 생각해냈어요. 내년에 짠-하고 알릴 계획이에요. 직원들이 얼마나 감동할까 생각하니, 저부터 행복해지더라고요. 또, 감동을 써버렸네요(웃음)."

▷확실히 감정이 풍부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혹 이성과 결단력이 필요한 대표로서 감성적 성격 탓에 힘들 때도 있을 텐데요.

"사실, 8년째 갈등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른 회사보다 좀 더디게 성장한 것도 있고요. 디자인이나 브랜딩 회사는 창작이다 보니 완성이 없어요. 고치고 다듬고 수정하는 일이 일상이죠. 브랜딩이나 디자인 회사에 야근이 많은 이유예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8년째 야근이 없어요. 일이 많거나 완성도가 부족하면 직원에게 연장근무를 부탁할 법도 한데 인간 정진우로서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혼자서 밤새우는 일은 있어도 직원들 야근은 못 시켜요. 힘에 너무 부칠 때면 '이게 맞는 길일까' 여전히 고민하고 그래요."

착한브랜딩연구소 브랜딩 작품
착한브랜딩연구소 브랜딩 작품 '커피맛을 조금 아는 남자'.

▷회사 대표로서 또 인간 정진우로서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면요.

"어떤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성공은 더 많은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요. 그런 특권을 가진 회사 대표이자 그런 대표 자리를 잘 감당해나가는 정진우가 되고 싶어요.

혹자는 성공과 돈을 동의어로 생각하지만 저는 성공을 도전의 기회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아직은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마음껏 도전하고 뒹굴 수 있는 특권이 더 욕심나거든요. 그러고 보니 '안식월 있는 회사'나 '장기 계절 휴가'처럼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하려면 빨리 성공을 해야겠네요. 순간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웃음)"

착한브랜딩연구소에서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큐레이션 서점' 굿브랜딩북스'가 다소곳이 서 있다. 작지만 작지 않은 이 서점 역시 정진우 소장 작품이다. 그는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기쁨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고, 책 속 한 문장이 주는 감동을 만인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 초 서점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봤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는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된다."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에 소개된 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의 한 구절이다. 따듯하고 다정한 기분이 드는 이 시는, 오늘 만난 정진우 씨를 똑 닮아있다. 불현듯 이 시구가 머리를 스친 이유다.

개인과 가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브랜딩의 본질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쉽게 감동하고 감성에 잘 젖으며 누구에게도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천성을 가진 그에게, 브랜딩이란 천직이 아닐까.

2018년과의 작별을 겨우 한 달 앞둔 지금 그가 만들어낸 브랜딩이 더 많은 이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그리고 브랜딩에 녹아든 이야기가 더 널리 멀리 퍼질 수 있기를, 함께 바라야겠다.

매일신문 디지털 시민기자 이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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