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쌀을 주식(主食)으로 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춘궁기 보릿고개 체험을 일본 역시 오랜 역사적 시기 동안 경험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은 부족한 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조선의 토지를 강제 몰수한 후, 그 땅에서 수확한 쌀을 매년 일본 본토로 옮겨갔다. 쌀의 운송을 위해서는 항구가 필요했고 조선최대의 곡식창고인 전북평야를 낀 군산은 이 조건에 가장 적합했다.
작고 조용한 어촌이었던 군산은 쌀 유통과 운송의 중심지가 되면서 경성에 이어 조선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도시로서 급성장한다. 큰돈이 오고 가는 곳에 헛된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군산은 빛나는 삶의 기회를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 조선 여기저기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댔다. 채만식 소설 '탁류'(1938)에 등장하는 정주사도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정주사는 금강 유역 서촌이라는 지방에서 군청서기를 하던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종의 명예퇴직을 당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가족을 데리고 군산으로 이주한다. 기술도, 이렇다 할 이력도 없는 그가 중년의 나이에 네 명이나 되는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왜 겁도 없이 일본인들이 흘러넘치던 신흥도시 군산으로 건너갔던 것일까.
밤이면 강 건너에서 화려하게 빛나던 군산 시가지의 불빛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먹어 본 빵집 이즈모야의 달콤한 단팥빵 맛에 매료되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어쨌건 그는 선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선산과 논, 집까지 모두 팔아 치우고는 군산으로 이주해서는 투기꾼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는다.
정주사만이 아니었다. '탁류'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외지에서 군산으로 흘러들 와서는 도덕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파탄을 겪는다.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던 이십 세의 순수한 여자는 돈 때문에 정조를 버리고, 정직했던 은행원은 공금을 횡령하여 노름과 난봉을 일삼는다. 일제강점기 동안 군산은 일제의 식민지 경제수탈과정에 기대어 급성장하면서 전통도 윤리도 모두 망각해버린 도시였다. 그런 도시에서 누가 삶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군산에 발을 들인 순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도덕적 가치도 잊고, 삶의 이력도 잊고 오로지 욕정과 탐욕에 마음을 빼앗겨간 것이었다.
해방이 되어 일본인들이 쫓겨나가면서, 일제가 군산에 부과했던 역할도 사라졌다. 도시를 지탱해 온 경제적 동력이 소멸됨에 따라 군산은 자연히 쇠락의 길을 밟아 갔다. 이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 가옥과 이즈모야 빵집 자리에 들어선 단팥빵 전문점 등 식민지의 상흔이 역설적이게도 대표적 관광 상품이 되어서 군산을 지탱해주었다. 한국 근대사의 희생물인 이 도시가 최근 또 다시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 GM이 군산 공장을 폐쇄한 것이다. 근대사의 전철을 다시 밟아 가는듯한 군산의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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