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겨울 대구 수성못 주변 인도에서 좌판을 펼쳐놓은 노인이 젊은이들의 운세를 보는 사진이다. 멀리 뒤로 '호수'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간판이 보인다. 6070년생들에게 익숙했던 수성못의 모습이 사진에 묻어있다. 신년에 점을 보는 건 주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한 엄마의 몫이었지만, 젊은이들이 주변에 둘러선 모습이 이채롭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짐작하고 그려본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기에 요즘의 '확증편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 좋다는 말도 귀에 담지만 대개 유효기간은 사나흘이다. 좋다는 것만 가늘고 길게 기억해 미래 모습의 수를 놓는 데 쓴다. 실현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 자기 주문 정신 승리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며 점괘에 맞는 기억만 골라내는 '바넘효과'다. 혈액형별 성격에 자신의 성격을 꿰맞추는 것과 같다. O형 혈액형 성격에 맞춰 자신을 정의하고 그 틀에 맞췄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AB형이어서 다시 그 성격으로 갈아 끼우는 것과 비슷하다. 신년운세를 볼 때마다 비슷한 풀이가 나옴에도 설레는 이유다.
점을 봐주는 이들은 "운명을 있는 대로 믿고 가만히 있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한다. 운명은 생물인데 이런 운이 있으니 열심히 살면서 만들어 가거나, 액운이 있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열심히 바꿔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점쟁이는 '운명을 예측하는 이'라기보다 '상담자' 역할에 어울린다.
신년운세의 결과는 대개, 요즘 말로 '답정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열심히 살면 된다. 그게 어렵다. 운명은 개척해가는 것이라며 안도한다. 복채의 가치를 합리화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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