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대구만 분지(盆地)일까?

전영권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위성사진에서 대구 지역을 살펴보면 남쪽과 북쪽에 비교적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대구분지'가 뚜렷이 나타난다. 북쪽은 팔공산지(1,193m)가 동-서로 가로놓여 있고, 남쪽은 비슬산지(1,084m)가 역시 동-서로 가로놓여 있다. 분지 가운데를 금호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화원읍 사문진교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자세히 보면 팔공산 자락과 비슬산 자락 사이의 평평한 공간을 볼 수 있다. 그 평평한 공간이 바로 대구분지다. 분지 동쪽과 서쪽의 잘록한 부분은 금호강에 의해 침식된 부분이다. 분지 내부 평지도 금호강과 그 지류에 의해 침식과 퇴적이 반복하여 이루어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전적 의미의 분지는 산지나 대지(臺地)로 둘러싸인 평평한 지역으로 설명된다. 분지(盆地)의 한자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부가 움푹하게 파인 그릇 모양의 땅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분지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평평한 땅이 산지로 완전히 에워싸여 있는 분지를 비롯해 대구분지처럼 좌·우가 열려 있는 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릇처럼 생긴 분지로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가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종군기자가 화채 그릇을 닮았다 하여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학창 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지 도시가 대구라는 얘기를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분지 하면 대구를 사례로 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왜 대구가 분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온 것일까?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팔공산에 대한 인식이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공산당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영토를 끝까지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의 보루가 팔공산이었다. 또한 세계적 명소 갓바위가 위치한 곳이 팔공산이란 사실과 대구의 무더운 여름 날씨의 원인이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지라는 점이 대구를 분지 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 본다. 어쨌든 대구가 분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구분지와 관련하여 떠도는 허황된 루머 중 하나가 대구를 '고담도시' '수구 보수의 도시'라고 비꼬는 경우다. 하기야 전직 모 대통령조차 대구에 들러 지역민들에게 "대구 사람은 분지적 사고를 떨칠 필요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 '분지적 사고'란 용어 자체도 없을뿐더러 분지를 폐쇄적, 수구 보수적 개념과 연계시키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학창 시절에 배운 기억을 떠올려 보자. 우리나라는 육지 면적의 70%가 산지다. 부산, 인천, 울산, 포항 등 해안가에 인접한 삶터를 제외한 내륙의 삶터는 대부분 분지다. 서울이 대표적인 분지 도시다. 서울 외에도 남양주, 여주-이천, 대전, 충주, 광주, 남원, 춘천, 밀양, 거창, 안동, 영주 등지가 분지임에도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과 연관시켜 비꼬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유독 대구분지만큼은 예외였다. 아마도 먹고살기 힘들었던 1960, 70년대 후진국 상황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치는 동안 그나마 잘나가던 도시가 대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 역시 지역 출신이다 보니 온갖 시샘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분지라는 이유만으로 대구가 공격을 당할 필요는 없다. 또다시 그런 루머가 떠돌면 우리 지역민들은 이렇게 얘기해주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해안가를 제외하면 모두가 분지라는데, 귀하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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