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어느 날,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다.
어떤 이에겐 그저 요리 과정과 그에 따른 다양한 음식들이 쉴 새 없이 나오는 평범한 음식영화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 '리틀 포레스트'이지만, 자신의 근본을 찾고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한 고독한 "아주심기"를 보여줌으로써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심어지고 보살펴 져야 하는 아주심기와는 다르게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삶을 준비하고 본성을 찾아가는 인간다운 삶의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인지 담담하다고만 생각했던 첫 기대보다 더 시리게 그 영화가 다가왔다. 물론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특정 연예인이 나오는 영화를 본다는 주책 맞은 약간의 설렘을 가슴에 품고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그 특정 배우보다는 오히려 그 영화 속 사람들, 이웃, 관계, 노동, 요리, 음식, 아주심기, 자연과 같은 모습들이 더 크게 가슴에 들어찼고 결국 영화를 마치고선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마도 그 영화 속에서 나의 민낯을 보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다른 무엇인가를 쥘 수 있다,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실상은 절대 움켜 쥔 손을 펴려 하지 않는, 그래서 '아주심기'를 할 자신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주절대는 앵무새 같은 낯선 민낯을...

계절에 따른 음식도 많이 등장 한다. 여자 주인공이 고향집을 찾은 첫 번째 이유가 '배가 고파서'였으니까. 하지만 그 전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정당한 노동이었다. 정당한 노동에는 계절에 따른 식재료들을 얻기 위한 과정은 물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만드는 과정, 즉 요리, 역시 노동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다른 누군가가 차려 준 밥상 앞에 앉아 그 음식들을 먹기만 한다면 그것은 요리라는 노동의 과정이 포함되지 않은, 말 그대로 '차려진 밥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내 몸으로 노동을 하고 내 손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들이 아니기에 차려진 밥상 위에 있는 음식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참된 가치를 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노동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의미 있는 한 끼. 그 원인과 결과의 순환은 닭과 병아리의 이야기처럼 선후 없이 이어져 우리네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한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광활한 우주 속 자연은 순환되고 나 역시 그 자연의 일부인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 속 어디에선가 잠자고 있던 내 안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음식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요리, 또는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음식이 완성되기까지의 요리과정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삼색 설기떡'을 여자 주인공이 만들었을 때, 동네 소꿉친구 중 한 명이 '아줌마가 만든 건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네가 만든 것은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난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여자 주인공이 속으로 '귀신같은 녀석'이라며 삼색 설기떡을 만든 과정을 엄마가 만든 것과 비교하며 설명하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음식들 중에 오늘은 '마롱 브륄레'를 만들어 볼까 한다. 여자 주인공의 엄마가 말한 것처럼 원래 이름은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로, 차가운 크림 커스터드 위에 유리처럼 얇고 파삭한 캐러멜 토핑을 얹어 내는 프랑스의 디저트이다. 이 영화에서 만든 크렘 브륄레는, 달콤한 푸딩 아랫쪽에 마롱(marron), 즉 달콤하게 조린 밤을 넣어 만든 것으로, 보다 정확한 이름으로는 '마롱 크렘 브륄레'라고 해야 하지만 그 이름을 어려워하는 어린 여자 주인공을 위해 엄마는 보다 쉽게 '마롱 브륄레'라고 알려 준다.

영화 속 마롱 브륄레는 엄마와 여자 주인공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음식 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자 주인공이 어색해진 동네 소꿉친구에게 사과의 의미로 건내 주는 달콤 쌉싸래한 음식으로도 등장한다.
만드는 방법이 크게 어렵지 않고 차갑게 만들어 서빙 하는 요리로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면 몇 일 동안은 거뜬하게 보관 할 수도 있다. 거기에 화려한 불 쑈까지 덤으로 뽐 낼 수 있으니 이런 요리법 하나쯤 익혀 두었다 손님상차림이나 지인들과 함께 하는 티푸드 자리에 깜짝쑈로 내 놓으면 어떨까.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됐으면 준서맘과 함께 '리틀 포레스트' 속 '마롱 브뤨레'를 만들러 가보자.

◆재료
지름 9.5cm, 높이 5cm 원형 레미킨 4개 분량
① 삶아서 속만 파 내 성글게 으깬 밤(마롱) 30g×4개=120g
② 커스터드 푸딩: 우유 200g, 동물성 생크림 150g, 바닐라 빈 1/4개
달걀 노른자 60g, 흰설탕 50g
③ 마롱 크뤌르 위에 뿌릴 황설탕, 주방용 토치 외 기본적인 베이킹 도구들
◆만들기
① 제일 먼저 삶아서 속만 파 내 성글게 으깬 밤을 30g씩 4개의 레미킨 바닥에 고르게 펴 준다.
② 바닥이 두꺼운 작은 냄비에 우유 200g, 동물성 생크림 150g, 바닐라 빈 1/4개(속의 씨를 긁어 낸 껍질도 함께 넣어 줌)를 모두 넣고 냄비의 가장자리에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 올 때까지만 끓인 뒤 불에서 내린다. 불에서 내린 냄비는 바닐라 빈의 향이 보다 진하게 우유에 베이게 뚜껑을 덮어 약 30분간 둔다.
③ 다른 깨끗한 볼에 달걀 노른자 60g을 먼저 넣고 뭉친 부분이 없도록 손거품기로 잘 풀어 준다.
④ ③번 볼에 흰설탕 60g을 넣고 달걀 노른자의 색이 연한 미색을 보일 때까지 다시 손거품기로 충분히 저어 준다.
⑤ ④번 볼에 충분히 향이 우러난 ②번을 조금씩 천천히 부어 주며 손거품기로 잘 섞어 준다.
⑥ 깨끗한 볼에 체를 걸쳐 놓고 ⑤번을 천천히 부어 바닐라 빈의 껍질, 바닐라 빈 속 씨를 긁을 때 함께 긁힌 줄기 등을 걸러 낸다.
⑦ 바닥에 미리 마롱을 넣어 놓은 4개의 레미킨에 ⑥번을 80% 정도 채운 다음, 은박지로 레미킨의 윗면을 하나씩 뚜껑처럼 덮어 감싸 준다.
⑧ 높이가 있는 평평한 그릇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깨끗한 행주를 그릇의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위에 준비된 레미킨을 적당한 간격을 두고 놓는다.
⑨ ⑧에 미리 끓여 한 김 식힌 물을 레미킨 바닥에서 1cm 정도 높이가 되도록 부어 준다.
⑨ 160˚c로 예열된 오븐에 60분 동안 찌듯이 구워 준다(기호에 따라 조금 덜 구워도 좋아요).
⑩ 오븐에서 꺼내 식힘망에 올려 한 김 식힌 마롱 브륄레는 호일을 벗긴다. 거의 식은 마롱 브륄레는 수분이 날아 가지 않도록 다시 랩으로 윗면을 완전히 감싼 뒤 냉장고에 넣어 서빙 전까지 차게 보관 한다.
◆정다운의 TIP
냉장고에 넣어 둔 차가운 마롱 브륄레를 서빙 직 전 꺼내 랩을 벗겨 낸 후 윗면에 황설탕을 골고루 뿌리고 주방용 토치로 짙은 갈색이 나면서 얇은 막이 생기도록 그을려 준다. 이 때 토치의 힘으로 황설탕이 주변으로 날아갈 수 있으니 조심한다. 먹을 때는 그을려져 갈색이 된 얇은 막 부분을 숟가락으로 '탁' 처서 깨어 가며 맨 아래에 숨어 있는 마롱과 함께 먹는다. 달콤 바삭한 카라멜 아래 바닐라 향 가득 한 커스터드 푸딩, 그리고 고소한 밤까지 한 입에 넣으면 입 안 가득 풍부한 맛과 함께 서로 다른 식감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3일내 보관가능

"베이킹 스튜디오 '쿠키공장' 원장 by준서맘" 정다운
(#쿠키공장 #쿠키공장준서맘 #준서맘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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