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모든 것은 지나간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민음사 1판

제주 돌문화공원의
제주 돌문화공원의 '천태만상'.

'실격'의 사전적 의미는 '기준미달이나 규칙 위반으로 자격을 잃음'입니다. 그러면 인간실격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인간이 그 자격을 잃는 것일까요?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입니다. 본명은 쓰시마 류지. 1948년 인간실격을 완성하고 그 해 39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작품은 전후 일본의 우울한 시대상을 잘 묘사한 일본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면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작품은 '나'라는 화자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로 된 액자식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어 융화되지 못했던 요조는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 익살꾼을 자처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에 번번이 좌절하면서 술과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이릅니다. 하지만 자살 또한 성공하지 못하고 믿었던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면서 자신을 인간실격자라 여기고 결국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립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p.13)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입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누가 이 문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바로 이어지는 문장.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p.13). 굳이 인간의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야 철이 든다고 하는데, 요조의 불행은 이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억지로 삶의 본질을 탐구할 필요 없이,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규범 테두리 내에서 각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면 족할 것 같습니다. 거기다 양보, 배려, 협동까지 하면 금상첨화겠지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더 보겠습니다.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P.92) '세상이라는 것이 개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P.93) 결국 불특정하고 추상적인 개념인 세상보다 구체적인 개인이 중요하며, 그 개인조차 서로를 잘 모른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p.134)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갈 뿐만 아니라 변합니다.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것이 아닐까요? 현재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요조들에게 '당신만이 힘든 게 아니야. 모두가 힘들어. 그러니 조금만 참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입니다. 자포자기하지 않는 한 자격미달의 인간은 없습니다. 결국 인간실격이란 인간존중의 반어적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방황하는 청춘의 한 시기를 통과의례처럼 잘 묘사한 작품으로 서양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면 동양에는 『인간실격』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성격이 닮았고, 내용 또한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같이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김광웅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