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창의적이고 환상적인 공상을 눈과 귀를 통해 초현실적 으로 그려내는 결과물이다.
예술적 표현을 위한 창작 과정 중에서는 그들의 예술가로서 꿈꾸며 노력해온 나무의 굴곡진 나이테 같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행위들이 많다. 변화하지 않는 현상을 부정하며 새로움을 찾는 탈근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계몽주의의 철학적 이론과 현상들이 바로 예술이 만들어지는 그들의 외침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적인 혼을 담은 예술행위를 통해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집념과 열정을 드러내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다시 예술적 혼을 불태운다.
현대사회의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 그들은 때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행위자들로 지탄받기도 하지만 예술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예술의 황금시대였던 과거부터 늘 변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은 살아있으면서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인 화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숙한 양식의 발전과 입체파의 발전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사후에 평가를 받았고, 이런 평가가 절대적인 호응을 얻으며 세계적인 화가로 불려지고 있다. 이들은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한 목적보다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자신의 주관적 주장을 통해서 시대를 앞서 나간 탓에 대중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다. 예술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런 변화 속에 우리에게 존재해왔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에 대해 한스 애빙은 예술가가 가난한 이유는 예술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예술가의 열정적인 활동을 위한 사회적 착취 구조와 저조한 문화 인식 때문이라고 하였다.
예술은 사회에 필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지만 인색한 사회적 인식 구조 및 편향적인 경제시장으로 인해 그들의 작품 활동은 정상적인 수입을 벌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예술을 죽이는 이상현상이 현대사회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시장의 승자독식 구조의 편향화를 촉진하고 지나친 상업성을 통한 예술의 변질을 촉진시킨다.
그럼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지원 방식으로 '팔 길이 원칙'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팔 길이 원칙'은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공공의 지원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현대사회에서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는 이유는 예술시장 실패의 속성 때문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때 예술은 가치재이면서 공공재로서 인정된다. 하지만 이기적인 특정 집단의 지원금 획득을 위한 비상식적 행위로 인해 예술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트렌드라 불리는 쏠림현상의 가속화는 그들의 내적 예술혼을 변질시켰고 결국 사회가 예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변질된 예술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지나친 상품화로 인해 예술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문화의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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