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삼척은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고산준봉이, 동으로는 파도소리에 노래하는 수많은 갯바위와 아름다운 해안절벽이 어울려 답사객들의 발길을 멈추게한다.
삼척은 삼한시대 실직국 이래,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와 자연유산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삼척은 환선굴, 대금굴, 신리너와마을, 해상케이블카 등 천혜의 절경이 즐비하지만 이번 답사여행에서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조상 묘인 준경묘와 영경묘, 대몽항쟁기에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집필한 두타산 천은사를 찾아간다.
삼척 김 씨의 시조인 실직군왕의 무덤이 남아 있고, 이성계에게 내쫓긴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능도 있다.
◆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무덤, 준경묘(濬慶墓)
준경묘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의 무덤이다. 이양무는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부친이다. 부인은 상장군을 지낸 삼척 이 씨 이강제의 딸이다. 강원도 삼척시 활기리에 있다. 황제가 나왔다는 황터, 곧 황제의 기운인 황기(皇氣)의 어원이 변해서 활기리라 한다. 마을회관에서 산길을 약 2.1km를 올라야 한다. 입구에서 약 600여m는 가파르다. 문화유산답사팀이 힘들게 가파른 길을 올랐다.

답사팀중 한 일행이 우리집 5대조 할아버지 산소도 못 가는데 왜 남의 할아버지 산소를 힘들게 가야하느냐고 투덜거린다. 가는 길목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아름답다는 미인송을 만났다. 이 미인송은 2001년 5월 충북 보은군 천연기념물 제 103호인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소나무 혼례식을 가졌다. 이 행사를 계기로 삼척시와 보은군은 사돈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아들 목조가 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주하여 1231년(고려 고종18)에 별세해 이곳에 모셔졌다고 한다. 이곳의 풍수지리는 두타산이 준경묘, 영경묘의 태조산이며 그 내룡이 만들어낸 진혈대지가 조선왕조의 근원지가 되는 명당 중 명당이라고 한다.준경묘 혈당 앞에 산봉우리가 다섯 개가 일자형으로 웅장하게 도열해 있다. 묘앞에 솟아 있는 안산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근산과 방위산, 오른쪽으로는 대명산과 역마산이 감싸고 있다.

이들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조선왕조 500년 간을 이어왔다고 한다. 무덤 앞에는 정자각이 아닌 일자각의 재실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일자각 앞에는 신비하게도 지대가 상당히 높은 곳임에도 샘물이 솟아오른다. 이는 산 능선의 기세, 곧 용세가 왕성하여 혈을 맺은 후에도 남은 기운이 지상으로 분출하는 현상이다. 이를 진응수(眞應水)라 한다.
진응수가 있으면 진혈이라는 증거이며 필시 대부와 대귀가 기약되어 큰 부자와 높은 벼슬이 나오는 자리라고 풍수지리에서 말한다. 그런 연유로 5대손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한다.
이 무덤에는 백우금관(白牛金棺) 전설이 전해온다. '목조 이안사가 삼척에 이주하여 살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묘자리를 구하려 사방을 헤매다가 지쳐서 지금의 산소 자리에 주저앉아 쉬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이런 말이 들린다. "참 좋은 대지로다! 이곳에 묘를 쓰면 5대후에 왕이 나겠구나!" 하는 탄성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저 멀리 한 도승이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려 달라는 청에 "이곳에 묘를 쓰자면 개토제 때 소 백 마리를 잡아야하고, 관은 금으로 만든 것을 써야 효험이 있소"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안사가 생각해보니 가난한 살림에 소 백 마리와 금으로 만든 관을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마침 처가에 흰소 한 마리가 있어 일백백자와 흰 백자는 음이 같으므로 소 백 마리는 흰소 한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보리 짚이 황금색이니 그것으로 금관을 대신해서 장사를 지낸다. 그후 그의 5대손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는 다소 황당한 전설이지만, 울창한 금강송림과 산세가 명당임을 느낄 수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모 묘소인 영경묘(永慶墓)
영경묘는 무덤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모이며, 이양무의 부인인 목조 이안사의 어머니 무덤이다.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에 있다. 준경묘에서 약 4km 거리이다.

이 씨는 남편과 함께 전라도 전주에서 이곳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사망 후 아들 목조가 이곳에 안장 후 함경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내내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고 수호군을 두고 관리했다고 한다. 고종 때(1899년) 묘호를 연경으로 공식 추봉했다. 준경묘에 버금가는 명당이라고 한다. 이 무덤 가는 길에도 쭉쭉 솟은 금강송이 줄지어 있다.

◆하늘의 은혜에 감사한 천은사(天恩寺)
두타(頭陀)는 번뇌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깨끗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하거나 산야를 다니면서 밥을 빌어먹고 노숙을 하면서 온갖 쓰라림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불도를 닦거나 또는 그 승려를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한국에 동명이산이 수두룩하지만 두타산(頭陀山,1,357m)은 동해와 삼척시에 걸쳐 있는 산이 대표적이다. 산세도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요, 이름도 속세의 번뇌를 떨치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천은사(泉隱寺)는 두타산 동쪽 울창한 계곡 속에 숨은 듯 깊숙이 있다. 천은사는 두타삼선, 인도에서 온 3명의 신성이 흰 연꽃을 가져와 창건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1899년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릉을 만들 때 천은사를 원당사찰로 지정했으며, 목조의 아버지 묘소인 준경묘를 만들 때에는 천은사를 조포사로 정해 나라의 제사에 쓰이는 두부를 만들도록 했다. 이때부터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울창한 숲속 옥구슬 같은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두타교, 불이교, 해탈교를 지나면 절 앞마당이다.

천은사 도착하기 일보 전 우측 계곡 건너 조그마한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제왕운기'를 저술한 이승휴를 모신 사당 동안사(動安祠) 이다. 이승휴(李承休 , 1224~1300)는 고려시대 때 강직한 관리였으며, 대학자였다.
그는 가리 이 씨의 시조로 호는 동안거사이다. 고려 고종 때 문과시험에 합격한 신진관리로 직언으로 여러번 파직을 한 올곧은 선비였다.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다녀온 후 우사간, 전중시사 등을 역임하였으나 그 뜻이 관철되지 않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 외가인 두타산 구동으로 돌아와 용안당을 짓고 여기에서 제왕운기를 저술했다.
두타산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그가 침묵을 깨고 제왕운기라는 대서사시를 쓰게 된 이유는 원나라의 지배와 간섭에 스러져가는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단군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우리 겨레가 중국 못지않은 오랜 역사와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함이였다. 또한 선정을 편 왕과 악정을 편 왕을 비교해 통치자로 하여금 선정을 펴도록 유도하였다.
tip:
*가는 길: 대구→중앙고속도→영주→봉화→36번 국도→준경묘(소요시간 약 3시간30분)
*준경묘, 연경묘, 천은사는 입장료 및 주차료는 없다.
*주위에 가볼 만한 곳: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 공양왕릉, 수로부인 헌화공원, 청소년 관람 불가공원 해신당공원, 석회암동굴 대금굴•환선굴(033- 576-0656~8)
*삼척해상케이블카(033-570-4608):성인 왕복 1만원.
* 5.4km의 해양레일바이크 2인승 2만원,
글 사진 답사마당 이승호 원장(leesh06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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