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은 단지 사려 있는 모방이라고 한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이다. 독창성이 세상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기존에 이미 나와 있던 것을 조금 더 재치 있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데 있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가 창의적인 발명이라 여기는 많은 것들이 알고 보면 그렇다. 제임스 와트가 끓어 넘치는 주전자 뚜껑을 보고 홀연히 증기기관을 발명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인류 역사 최고의 발명품으로 많이들 꼽는 것에 종이, 문자, 도르래, 페니실린, 칼, 도자기, 나침반, 시계 같은 것들이 있다. 모두 우열을 다투기 힘들 정도로 인류 문명에 크게 공헌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그중 기술적인 정교함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다. 시계, 특히 기계식 시계다.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식 시계의 내부에는 여러 개의 톱니바퀴들이 연결되어 시곗바늘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근대 이후 시계는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태엽을 사용하고 있으나 최초의 동력은 줄에 연결된 무거운 추였다. 기계식 시계는 14세기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것의 제작을 가능케 한 것이 13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폴리옷-굴대 탈진기라는 이름도 낯선 부품의 발명이다. 탈진기는 추의 중력으로 톱니를 움직일 때 그 움직임이 규칙적이 되도록 고안한 장치다.
그것으로 시계는 특유의 똑딱똑딱 소리를 낸다. 탈진기의 구조에 대한 발상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누가 그걸 처음 발명했는지 확실치 않다. 당시 유럽에는 적지 않은 수의 수공업자들이 있었고 탈진기는 그 당시 시계 제작자들 사이에서 구름처럼 일어난 깊이 있는 모방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 후 그것은 여러 과학자들이 알아낸 진자의 등시성 같은 과학 원리의 적용으로 정확도는 물론 실용성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기계식 시계가 조선에 전해진 것은 북경으로 건너간 사신이 서양 신부로부터 추동식 시계를 얻어온 1631년이었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이란 책에 의하면 조선에서의 기계식 시계는 신기한 서양 물건이라는 것 이상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일각을 다퉈야 하는 사회가 아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만드는 데 몰두하는 행위를 학자들이 학문을 통해 수양해야 할 근본을 해치는 행동이라 여겨 그랬는지도 모른다.
조선에서 기계식 시계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매우 적었다고 한다. 그들이 시계를 만들고 깊이 있는 모방의 단계까지 나아가기에는 어깨너머로 가르치고 배울 기술도 사람도 부족했던 것이다. 해시계와 물시계를 발명한 세종 이후 새로운 시계의 제작과 확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기술은 또 다른 기술을 낳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기술이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수레바퀴 구르듯 전진하고 있었다.
얼마 전 한 과학발명대회에 심사를 하러 갔다. 심사위원 중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법무사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디어란 세상에 없다는 전제하에 심사가 이루어지지만 표절에 대한 검열은 필수다. 학생들의 발명품은 기존 것을 모방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러한 과정을 겪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곳에서 원래의 아이디어를 비틀고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계속 고민하다 보면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고 언젠가는 기존의 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과에 상관없이 그러한 과정을 경험하는 일이며 그걸 통해 재미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는 순위에서 멀리 밀려나 있다. 과학자가 1위였던 적도 있다. 1970, 80년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때였다. 서구에 비해 출발에서부터 한참을 뒤져 있던 우리의 과학기술은 선두 그룹의 뒤를 쫓아가기에도 벅찼다. 비록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이뤘지만 닮고 싶은 대상에서 과학자가 멀어지게 된 건 그 속에 깊이 있는 모방의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모방은 창조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라지만 무언가를 빼보고, 곱해보고, 변경해보고, 뒤집어보고, 합쳐보고, 연결해보는 생각 깊은 모방이라야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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