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오후 9시'의 역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방문, 강원래 이태원 자영업자 대표 등 상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을 방문, 강원래 이태원 자영업자 대표 등 상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창훈 경북부장
전창훈 경북부장

정치권이 최근 '오후 9시' 논쟁으로 뜨겁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정부의 일률적인 영업규제 기준을 이같이 비꼬았고, 정부와 여당은 해당 기준이 방역에 효과가 있다며 발끈하고 있다.

오후 9시 논란은 대구경북에서도 발생했다.

대구시와 경주시가 지난 16일 음식점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의 영업 제한 시간을 18일부터 오후 9시에서 11시로 2시간 늦춘다고 발표했다가 정부의 경고를 받고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두 지자체가 사전 협의 없이 방침을 정했다며 공개적으로 질타하는 중앙정부 담당 공무원의 기자회견도 있었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참 답답하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1년째이지만 아직 우리는 바이러스의 마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부터인가 본질은 잊어버리고 지엽적인 일에 집착하는 정부의 행태가 자꾸 목격된다.

도대체 오후 9시 기준은 뭘까.

담당 기관인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에 따르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국민들이 일과 후 야간 활동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기준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확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이렇게 정했어. 너희는 여기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따라야 해"라는 행정편의적인 발상도 담겨 있는 듯하다.

일각에선 각종 꼼수와 불법적인 영업으로 이런 조치를 비웃고 있으며, 대구 수성구 노래방이나 포항 죽도시장 인근 목욕탕 등 예기치 못한 '○○발(發)' 감염 확산은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은 힘들다"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대구 자영업자들이 최근 SNS를 통해 "오후 9시와 11시, 단 2시간이지만 우리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겐 생존권이 걸린 시간이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전문가들 또한 시간 제한보다는 만실 기준 허용 인원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실내 환기 등 방역 강화와 함께 실내 밀집도를 낮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문이다.

개인적으로 1년간을 반추해 보면 정부의 자만과 안일함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특히 늦어진 백신 확보는 뼈아프다. 선제적으로 나섰다면 충분히 백신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국민의 희생에 의한 'K방역'에 취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에 묶여 그러지 못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백신 확보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늦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세계적인 상황을 봤을 때 이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물론 방역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만이나 뉴질랜드 등조차 충분한 백신 확보를 해놨다. 이미 백신 접종이 한창인 나라도 여럿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25일 기준으로 인구 대비 백신 접종률이 30.77%에 이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빠르면 일부 국가는 올여름쯤엔 집단면역도 기대할 수 있다. 그때가 와도 아직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접종을 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고 이래저래 박탈감이 클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최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방법을 두고 '시설별 제한'에서 '행위별 중심'으로 개편, 다음 달부터 본격 논의하기로 한 점은 늦었지만 분명 다행한 일이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충분한 양해를 구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보완하려는 모습이다. 그것이 오히려 1년 내내 앵무새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브리핑하는 것보다 국민들로부터 더 공감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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