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넬이 스넬이었다면, 구찌가 구쯔였다면, 로렉스가 릴렉스였다면 지금처럼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우리는 샤넬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구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지고 싶어진다. 로렉스라는 단어를 들을수록 내 손목의 허전함을 느낀다. '사람은 이름대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듯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는 브랜드 네임처럼 살아간다.
작년, 대구시 명품빵 브랜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대구의 빵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며 그걸 부각시키고 싶어 하셨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대구만큼 빵집이 많은 도시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 가면 프렌차이즈 햄버거의 뺨을 치는 지역 햄버거 가게들이 즐비한데 대구도 그러하다. 파리에서 온 바게트 가게에서 맛 볼 수 없는 지역 빵집이 많다. 그래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브랜드 네이밍이 문제였다. 누가 들어도 대구를 상징하는 빵이라는 느낌이 들어야했다. 그래서 샤넬, 구찌, 로렉스를 흉내내보았다. 위의 브랜드와는 다르게 빵은 고급스러운 네이밍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빵은 대중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발음 역시 재미있다.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된발음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빵꾸, 빵점, 빵빵 등 빵이 들어가는 단어는 다 재미있었다. 네이밍 작업의 종착지는 바로 '대빵'이었다. 대구에서 만든 빵이니 '대빵'이라고 짓는 건 너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아이디어를 설득시켜가는 과정이 문제였다. 발표 전부터 우리 팀에게 닥칠 난항이 뻔히 보였다. '품위 없게 대빵이 뭐냐'라는 교수님의 표정, '지금 이름가지고 장난치는 거냐'며 화내는 사람들의 모습, '또 예산 낭비하고 있다'라는 악플 등이 예상되었다.
우리는 낯선 브랜드를 최대한 익숙하게 표현 해내야하는 사람들이다. 어렵고 낯선 이름을 일부러 공부하며 암기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브랜드 네임에는 이미 광고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광고비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광고를 해야 한다.
대구 빵을 '대빵'이라 표현하면 누구나 쉽게 인지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최고를 나타내는 느낌도 들었다. 말 그대로 '대빵'이니까. 전문가 평가 위원회에서 나는 그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브랜드 네이밍의 중심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 브랜드에 맞는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접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 무게 중심이 있어야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대빵'이라는 브랜드 네임이 통과되었고 BI(BRAND IDENTITY) 작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브랜드 네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짓는 일이다. 이제 정체성이 확립되었으니 대나무 줄기 올라가듯 '대빵'은 대빵다워야 한다. 나는 감히 브랜드 네임을 씨앗에 비유하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고 말이다. 지금 당장에는 그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 흙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씨앗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도 하고 비가 오면 영양분을 먹고 자라기도 한다. 어느 날 시간이 지나보면 멋지게 자라있는 줄기와 열매를 발견하기도 한다.
대빵이 그랬으면 좋겠다. 대구에 가면 대빵을 꼭 먹고 가야한다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름처럼 살아가는 대구의 빵이 되길 바래본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