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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가 와칸다가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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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통화를 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통화를 한 뒤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로 약속했고, 한반도 평화는 물론 세계적 현안 대응에도 늘 함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1.02.04. 청와대 제공
이상헌 선임기자
이상헌 선임기자

"역병이 없었다면 활기 넘치는 민주주의가 성공의 롤 모델이 돼 서구 역사는 다르게 전개됐을지 모른다."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편집장을 지낸 미국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신간 'Ten lessons for a post-pandemic world'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을 예로 들어 코로나19의 상처를 설명하면서다.

실제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 초기에 역병이 아테네를 휩쓸어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좀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던 아테네가 이겼다면 민주주의는 환하게 타올랐다가 곧 꺼져 버린 불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스파르타는 대놓고 독재를 일삼는 현대의 군국주의·전체주의 국가와는 달랐다.

공교롭게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표현으로 자주 설명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역시 코로나19라는 역병 속에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신(新)냉전이다. 심지어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양국의 군사·경제·기술 수준을 고려하면 신냉전이 과거 미소 냉전보다 인류에 훨씬 더 위험하다는 오싹한 진단을 내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 관계는 더욱 꼬여만 가고 있다. 전임자에 뒤질세라 강공책을 잇따라 밀어붙이면서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지난달에는 알래스카에서 첫 고위급 회담이 열렸으나 신장 위구르자치구, 홍콩, 대만 인권 문제 등을 두고 기 싸움만 벌이다 공동 성명조차 내지 못한 채 돌아섰다.

특히 맞짱 뜨기를 즐기던 전임자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벤치클리어링을 선호하는 듯하다.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일본·인도·호주 협의체인 '쿼드'(Quad)에 한국을 끌어들여 '펜타'(Penta)로 확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위세를 등에 업은 일본과 대만, 필리핀, 뉴질랜드 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상황은 대서양에서도 비슷해 중국을 편드는 러시아와 미국 쪽에 선 유럽연합이 연일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다만 중국의 경제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자국의 이해가 걸린 결정적 순간에는 서방국가들이 벤치에서 뛰어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G2의 충돌은 마블 영화에 나오는 은둔의 첨단기술 강국 '와칸다'가 아니라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국제 질서의 양극화가 현실화하면서 한국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구한말 쇄국주의자가 아니라면 고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양다리 걸치기(hedging), 균형(balancing), 편승(bandwagoning) 정도다. 국내 범여권 일각에선 한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다자주의를 거론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는 21일 백악관에서 있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에는 비상이 걸렸을 테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은 외교가의 진리인 만큼 무엇을 내주고 뭘 얻어올지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이다. 적어도 바이든 대통령과 첫 대면 회담을 가진 외국 정상이란 데에만 의미를 부여한다는 '조공 외교' 비판을 받았던 일본 총리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로 우리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북핵 문제와 코로나19 백신 협력이 아닐까 싶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양다리 걸치기든 균형이든 편승이든, 그 어떤 방법이든 좋다. 그러나 고급 도자기 밀수, 국비 가족 여행 의혹을 받는 장관 후보자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현 정부가 '운전자'니 '촉진자'니 같은 자화자찬만 잔뜩 늘어놓을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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