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미국의 '삼성 맥주'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동양철학박사)
이권효 계명대 특임교수(동양철학박사)

삼성 반도체 공장을 유치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삼성 맥주'를 출시한다는 최근 뉴스를 접하고 나는 놀랍고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삼성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후 이 지역의 맥주 회사는 기념 맥주를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디어 차원이었지만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신제품으로 만들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테일러시는 인구 1만7천여 명의 소도시이다. 삼성이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 지난해 초 공개됐을 때 이 지역은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주민들이 뜻을 모아 전력과 물 같은 기반은 물론이고 파격적인 세금 감면으로 결국 삼성을 유치했다. 삼성전자가 테일러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삼성 맥주는 2024년 공장 가동이 순조롭기를 소망하는 주민들의 마음이라고 하니 테일러시의 정성이 잘 느껴진다.

지난달 영국의 여론조사기관이 공개한 올해 글로벌 최고 브랜드 평가에서 삼성전자는 구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구글의 평가 점수가 111점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99점으로 큰 차이가 없다. 베트남과 네덜란드 등 5개 나라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를 차지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대구에 유학 온 베트남 대학생 20여 명에게 삼성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 아주 친근한 글로벌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성상회 이야기를 해주면서 "삼성의 출발은 여러분이 공부하는 이곳 대구"라고 말했지만 이를 아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게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호암 이병철이 대구에 삼성상회라는 작은 무역업체를 설립한 때가 1938년이니, 83년 전이다.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까마득한 시절이다.

대구는 삼성상회를 들어 삼성과 인연을 특별히 강조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이런 지역적 인연으로 따지면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호암이 첫 사업을 한 경남 마산의 협동정미소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마산에서 겪은 실패는 호암이 사업 능력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마산에서의 실패 후 중국을 포함해 곳곳을 다니면서 사업을 구상했다. 그 결과 일본 상인들이 장악하지 못한 틈새를 찾아 28세에 설립한 것이 삼성상회다. 경북의 과일과 건어물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거점으로 대구가 적합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의 삼성 맥주 소식을 계기로 호암 자서전을 읽어봤다. 1969년 삼성전자 설립 계획이 알려졌을 때 "삼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하면 기존 업체들은 모두 망한다"며 설립 저지 움직임이 크게 일어났다.(호암 자서전 326쪽) 그렇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한 차원에서 전자산업 개방 쪽으로 물꼬가 트여 오늘날의 삼성전자로 발전했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지은 호암은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세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삼성이 늘 위기 의식을 가지고 변화를 주도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은 호암의 이 같은 초심을 우직하게 지켰기 때문이리라. 이런 태도가 삼성의 정신이 아닐까 싶다.

삼성상회라는 삼성의 출발이 오늘날 의미를 가지려면 이와 같은 맥락을 깊이 살펴 기존과는 다른 이야기를 대구가 할 수 있어야 한다. 옛날 인연을 단순히 강조하는 수준으로는 세상에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삼성의 애칭을 제품의 이름으로 한다는 테일러의 삼성 맥주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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