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친애하는 나의 할머니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나의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셨다. 언제 그렇게 되셨는지 정확지 않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할머니 말로는 동네 아이들과 흙장난을 하다가 눈에 흙이 튄 다음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의료 수준으로 볼 때 앞을 못 보게 된 건 사후 처치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할머니는 처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마음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할머니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보이는 사람처럼 걷고 문고리를 찾았으며 정확한 위치에 스위치를 눌러 불을 밝히곤 했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건 할머니는 바늘에 실을 꿰 바느질을 하셨다는 거다. 실 끝에 침을 발라 바늘귀를 통과하는 마술을 보고 자란 덕분에 나는 시를 쓰게 되었다.

한번은 머리맡에서 뭔가를 고르고 계셨는데 검은콩 자루를 펴놓고 상한 콩을 골라내고 계셨다. 아주 정확히 왼편엔 상한 콩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집에서 기르는 닭, 염소, 개와도 곧잘 대화를 나누셨고, 내가 무섭다고 밤에 잠이 들지 못할 때마다 시작은 비슷한데 끝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난 그 이야기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그 이야기는 내 곁에 남아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다.

얼마 전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인 판사 이야기를 보았다.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깊은 절망 속에 빠져있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절에 들어가 매일 삼천 배를 했다는 얘기, 실컷 울고 나니 억울함이 풀렸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한 달 구만 배를 마친 그에게 스님은 육신의 눈은 시력을 잃었지만, 마음의 눈은 떠진 거라고 했다고.

그의 인터뷰는 새해 아침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이 글을 쓰게 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해준 어머니와 함께 공부한 로스쿨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들에게는 작은 배려나 친절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한 사람에게는 인생의 궤도를 바꾸는 힘이 되어줬던 거다.

'연대'라는 말이 허울뿐인 수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왕자' 속 여우의 말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마음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두 개의 눈을 준 이유가 어쩌면 하나는 남을 위해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 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쨍한 하늘과 싸한 바람이 부는 아침, 삶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임을 알려준 할머니와 김동현 판사, 그리고 눈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눈부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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