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체착륙과 대선

1991년 6월 14일 매일신문 1면
1991년 6월 14일 매일신문 1면 '칼機, 얼빠진 동체착륙' 1면 톱기사.

1991년 6월 13일 대구공항에 착륙하던 대한한공 여객기(KE376)의 조종사들은 랜딩기어 내리는 것을 깜빡했다. 랜딩기어 미작동을 알려주는 경고장치는 뽑혀져 있어 먹통이었다. 관제탑은 KE376의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4차례 콜사인을 보냈지만, 당황한 나머지 뒤따라오던 비행기 이름을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관제탑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KE376 조종사들은 "남의 얘기겠지?"라고 생각했다.

여객기에는 12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하마터면 대형 참사가 날 뻔했지만 하늘이 보우하사 부상자만 일부 발생했다. 기체도 치명적 파손을 입지 않았다. 당시 매일신문이 '얼빠진 동체착륙'이라는 1면 톱 기사를 실은 기억이 생생하다. 대한민국 항공 역사에 기록될 만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교통부는 대한항공의 대구-제주 노선을 한 달간 정지했고 기장과 부기장, 항공기관사의 면허를 박탈했다. 이듬해 1월 기장은 금고 10월, 부기장은 금고 8월을 각각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당시 판결을 내린 판사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다. 문제의 비행기는 비행 불능 판정을 받고 인하공업전문대에 실습용으로 기증돼 캠퍼스에 전시돼 있다.)

지난 4일 서산기지에서도 전투기가 동체착륙하는 일이 있었다. F-35A 전투기가 몸통을 긁으며 활주로에 내렸다. 비행기 고장으로 랜딩기어가 내려가지 않자 조종사가 침착한 대응으로 동체착륙을 시도해 성공을 거뒀다. 조종사도 무사했고 기체도 일부 외부 손상만 입었을 뿐이다. 베테랑 조종사의 위기 대응 능력에 외신들도 혀를 내둘렀다.

하늘로 떠오른 비행기들은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모든 조종사들은 소프트랜딩(연착륙)을 바란다. 경착륙까지는 괜찮지만 비상착륙, 동체착륙은 곤란하다. 1991년 여객기 동체착륙 사고와 2022년 F-35A 동체착륙 성공을 보면서 조종사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리더의 자질에 따라 공동체는 각기 다른 미래(연착륙, 경착륙, 불시착)를 맞을 수 있다. 두 달 후면 대선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소프트랜딩할 수 있는 리더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당최 잘 안 보인다는 것이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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