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골에서 1년을 살았다. 초등학교, 슈퍼마켓, 구멍가게, 우체국, 미용실이 전부인 작은 빌리지다. 서로가 서로를 다 알아 누구라도 마주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한가로운 마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아이들을 위해 아예 현관문을 열어놓는 평화로운 동네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궁금한 것은 다 물어보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미국에서 4년 반을 살았고, 영국 타운에서 1년을 살았는데도, 별다른 기억이 없어 아쉬웠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에 물을 적시기만 하고 아예 뛰어들지는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영국여인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국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답례로 그들은 각자 나를 초대했는데, 웬디는 손수 구운 케이크를 맛보여줬고, 블린다는 정원의 꽃을 선물했으며, 미셸의 쌍둥이 아이들은 우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놀았다. 주디와는 한국에 와서도 편지를 주고받았고.

친구는 낯선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문이었다. 그들의 집은 소박했고 가구는 낡았다. 설거지는 물을 받아서 했고, 한 번 쓴 은박지는 다시 썼다. 빈 아이스크림 통에는 음식을 보관했으며, 퇴근 후에는 매일 정원을 가꿨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시켰고, 독립한 아이는 가족휴가에도 자신의 비용을 부담했다.
친구는 영국을 만나는 통로였다. 직접 구운 케이크와 차를 판매해 학교운영비를 모으는데, 나는 케이크와 차를 나르고 그릇을 닦았다. 여럿이 한푼 두푼 모아 학교를 후원하는 방식과 학교강당이 주민들의 '카페'가 되는 것이 좋았다. 비가 잦은 나라에서 "비와도 소풍은 간다. 우리는 영국인이니까."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인상적이었고, 정원에서 꺾은 꽃을 선생님께 선물하는 아이의 마음은 예뻤다.
점점 영국인의 삶속으로 들어갔다. 교회에서 올리는 소박한 결혼식과 마을회관에서 여는 조촐한 피로연을 경험했다. 오래된 카펫과 흠집 많은 가구가 놓인 집에서 밍밍한 음식을 먹었다. 자연을 닮아 은은한 정원에서는 고상한 품성을 떠올리며 그들의 드러나지 않는 계급을 상상하기도 했다.

노인과의 우정도 가능했다. 매주 흰머리의 세야를 찾아갔고, 꽃 심는 법을 배웠으며, 함께 나들이도 했다. '첼시 플라워 쇼'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꽃을 사랑하는지와 얼마나 멋지게 정원을 가꾸는지를, '옥션'에서는 오래된 가구와 물건들을 어떻게 간직하고 어떻게 물려주는지를 보았다.
친구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 외에 무언가를 더 준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주고받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오래도록 이어지는 우정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다. 틀에 박힌 성공의 정의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지나치고 놓쳐버린 행복의 기술을 가르쳐준다. 삶을 느끼는 맛의 종류가 늘어났다.
그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기'보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기'를 선택하고, '모든 것에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것에 웃을 수는 있다'고 믿는다. '삶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어도 되지 않을까?'라면서, 불평 대신 축복을 센다. 내안에는 '미묘하지만 확실한 변화'가 일어났다.
친구는 영국을 알아가는 지름길이었다. 나는 책이 아닌 사람을 통해 영국을 배웠다. '누구를 만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듯이, 친구들 덕분에 나는 추억이 가득한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에릭 와이너는 말했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지? 솔직히 말하면 아직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고, 어쩌면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안경의 도수를 다시 맞추었고, 이제 앞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나도 안경을 '새로운 렌즈'로 갈아 끼웠으므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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