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갓 지은 글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원고 청탁을 받으면 미리 써둔 거 가운데 가장 나은 것을 골라 약간의 퇴고를 고쳐 글을 발표한다. 그러면 대체로 무난하다. 글이 실린 잡지를 받고 이불킥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단히 만족하느냐, 그것 또한 아니다. 어느 정도 숙성된 글을 발표하면 리스크를 좀 줄일 수 있다는 것 뿐이지,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글이 활자화된 책으로 나오면 그제야 잘못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을. 완벽하지 않은 것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문학을 하는 이유이며, 미력하나마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계속 실패하는 과정이 아닐까. 나를 다독이며 다음으로 간다.

내가 아는 시인 선배는 청탁이 오면 원고 마감날 새벽에 일어나 시를 쓴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 소리 내 읽어보고 원고를 전송한다고. 그 얘길 듣고 이 선배는 진짜 시인이구나! 감탄했다. 어떻게 보면 무성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래도 저래도 실패하는 일이라면 그날 아침 자신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게 정말 시 그 자체일지 모른다. 잘 빚은 시도 좋지만 나는 거칠지만 울렁임이 있는 시들을 꽤 좋아한다.

예전에 선생님은 글쓰기(여기엔 시도 포함된다)는 자기를 담보로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비유를 하셨다. "여러분 집 살 때 자기 돈 하나도 없이 담보 대출로만 집 사면 안 돼요. 그러면 집을 사도 자기 것이 안 돼요." 나는 그때 그 비유와 글쓰기가 무슨 관련이 있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이 말의 진의를 알게 되었다. 즉, 자기 자신을 담보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 현학적인 말을 끌어 붙이기보다 내가 잘 아는 것,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글쓰기 강좌를 할 때가 있는데, 내가 자신을 담보로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쓸 게 없다는 분도 있다. 그럴 수 있겠지만 내 존재가 지나온 히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거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그걸 깨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을 선생님께 누차 들어왔고, 나도 성경 말씀처럼 돌려드린다.

"그럼 너는 얼마나 너를 담보로 글을 쓰고 있니"라고 되묻는다면 그러려고 최대한 노력한다는 말로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나를 쓰려고 노력한다. 내 이야기를 쓴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진실이 담겼다면 가치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담보로 집이든 밥이든 지어야 정말 내 것이 된다.

소중한 사람에게 내미는 갓 지은 밥, 갓 구운 빵처럼 갓 지은 글을 드리고 싶어, 오늘 이 글은 새벽에 일어나 쓴다. 밤에 쓴 편지처럼 아침에 일어나 다시 살펴보면 부끄러워 또 내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번은 그렇게 내밀어본다. 오늘 아침 내게 찾아온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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