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레이코프(Lakoff)의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를 읽었다.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속 프레임에 부합할 때 사실이 의미를 갖는다. 모든 단어는 프레임을 불러낸다. 특정 단어를 반복해서 들으면 프레임이 강해진다. 단어 반복으로 강해진 프레임은 상식이 된다. 사람들은 상식이 된 프레임이 실재(實在)하는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프레임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프레임을 '정치적 스핀(Spin)'이라고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언론이 만든 프레임은 세대 갈등이다. 보수 언론은 집권세력인 586세대 대항마(對抗馬)로 20, 30대를 내세웠다. 요즘 20, 30대를 MZ세대로 부른다. MZ세대는 M세대와 Z세대를 합친 단어다. M세대는 1981~1995년, Z세대는 1996~2005년 출생자들을 나타낸다. 16~40세가 MZ세대에 해당하지만 사람들은 20, 30대를 MZ세대라고 한다. 보수 언론이 굳이 20, 30대를 MZ세대로 명명(命名)한 것은 세대 갈등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서다. MZ세대는 실재하지 않는 정치적 스핀이다.
현재까지 세대 갈등 프레임은 성공적이다. 정치적 스핀이 통했다. 대다수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0대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60대 이상에서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다. 4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들은 이미 한 후보에게 다 걸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 승패를 결정할 변수가 아니다.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가. 아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50대와 20, 30대 유권자들이 변수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이재명 후보가 50대에서, 윤석열 후보는 20, 30대에서 앞서 있다. 세대 갈등 프레임으로 윤석열 후보는 50대에서의 열세를 만회했다.
50대와 20, 30대 유권자들을 대립시키는 세대 갈등 프레임은 패륜적(敗倫的)이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대 갈등 프레임은 우리 사회의 보다 심각한 문제를 숨긴다. 세대 갈등은 빈부 격차, 소득 양극화로 나타나는 계층 갈등을 희석시킨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이 가난하고, 부모가 부자면 자식이 부자인 것이 현실이다. 가난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부정할 이유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대립시킨다는 점에서 세대 갈등 프레임은 수구적(守舊的)이다.
상층 586세대를 부모로 둔 20, 30대는 상층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갈수록 부, 권력, 명예는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상속된다. 예전에는 땅, 건물, 현금을 물려주는 재산 상속이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직업 상속이 대세다. 직업 상속은 막대한 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간혹 아빠 찬스도 사용된다. 물론, 부모가 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도 자식이 공부를 못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방법이 있다. 똑똑한 사람과 결혼해서 유전자를 개량(?)하면 된다.
부모가 의사나 변호사인 경우 자식이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다. 의사나 변호사가 직업을 대물림하려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의사나 변호사가 비상식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시절은 지나갔다. 교육비, 교육 기간, 치열한 경쟁을 감안하면 의사나 변호사는 가성비가 높지 않다. 의사나 변호사를 물려주려는 것은 상층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다. 직업이 곧 사회적 지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 즉 특정 세대는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계층에 따라 매우 다르다. 이들의 삶은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천차만별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대한민국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없다. 이 말을 믿는가. 믿는다면 당신은 순진한 사람이다.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30대 정치인은 30대 택배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다. 세대 갈등 프레임은 의도적으로 계층 갈등을 무시한다. 누가 세대 갈등 프레임을 만들었는가. 세대 갈등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는 자들, 계층 갈등을 외면하려는 자들이 만들었다. 그들이 웃고 있다. 세대 갈등 프레임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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