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던 골프장을 갈아엎은 허허벌판에 '한전공대'가 3월 2일 문을 열었다. 정식 명칭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지만 출범 전부터 하도 논란이 많아 한전공대란 이름이 더욱 익숙하다. 잘 알려진 대로 한전공대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올해 첫 신입생 110명을 모집한 이 대학은 에너지 분야를 특화한 '에너지공학부' 단일 학부 체제로 운영된다. 에너지 신소재, 에너지 인공지능, 차세대 전력 그리드, 수소에너지, 기후·환경 등 5개 분야를 중점 연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 모두가 국가 신성장 동력이 되는 분야지만, 교육과정에 원자력 발전은 쏙 빠져 있다.
문 정부는 자신의 임기 내 한전공대 개교를 위해 집착 이상의 꼼수를 부려왔다. 대학 설립 및 운영 비용을 부담하는 한국전력(한전)조차 2025년을 개교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2022년 개교에 맞추기 위해 달랑 4층짜리 건물 한동에 간단한 체육시설만 갖춘 채 신입생을 맞았다. 한전공대 특별법은 국회 산자위 소위원회를 거쳐 8일 만인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안이 통과됐다. 선(先)개교 후(後)법안 마련이다. 예산 확보, 부지 매입, 설계, 공사 등이 제대로 됐다면 현재 개교는 불가능했고,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던 만큼 적합성 조사 등 많은 절차가 생략됐다. '정치'가 끼어든 졸속 추진으로 지난해 미완공 학교 부지에 부과된 종합부동산세가 100억 원 규모라고 한다. 한전이 부담하는 1조 원은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또한 오는 2031년까지 무려 1조 6천억 원의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한전공대 특별법을 논의하는 소위에선 교육부조차 끼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국내 대학 정원의 4분의 1을 줄여야 하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대학 신설은 신중해야 하는 문제다. 그동안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전공대 설립을 우회적으로 반대해 왔기에 아예 '패싱'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제 정권이 바뀌어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는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위한 중점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고질적인 인력난 해결을 위해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정과 반도체 대학원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조차 반도체 전문 인력 부족을 호소할 지경인데, 업계에선 2031년까지 3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총수출 20%를 차지하는 차세대 먹거리인 반도체는 세계 각국이 국가안보 자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나서 기업과 함께 국제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점은 분명 올바른 국가 전략 설정이다. 하지만 반도체대학을 육성할 때 앞선 한전공대처럼 억지로 설립하는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계한 반도체 계약학과는 지난해까지 3개 대학(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에서 올해 4개 대학(KAIST, 포스텍, 서강대, 한양대)이 추가됐다. 학비뿐만 아니라 졸업 후 취업 걱정이 없으니 우수한 자원이 몰리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채용조건형 반도체 학과는 지방 대학에선 찾아볼 수 없다. 지방균형발전을 중요 가치로 여기는 새로운 정부가 인재 육성에 있어 지역 간 고른 분포를 배려해야 할 것이다. 마침 경상북도가 구미 국가 제5산업단지에 '제2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유치에 나선다고 한다.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비롯한 대구경북 대학의 풍부한 연구·인력 인프라를 주목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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