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피격 사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제9조, 이른바 '전쟁 포기' 조항 개정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평화헌법은 패전국 일본이 승전국에 제출한 반성문"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팩트'는 그의 신념과 배치된다. '전쟁 포기'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 쪽에서 먼저 나온 구상이다. 그 첫 제안자는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 동맹을 추진한 A급 전범 시라토리 도시오(白鳥敏夫)이다. 그는 A급 전범이 수감된 스가모(巢鴨) 구치소에서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외무장관에게 보낸 1945년 12월 10일 자 편지에서 천황제 유지 방안으로 전쟁 포기를 제안했다.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 당시 총리도 1946년 1월 24일 일본 점령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같은 제안을 했다. "시데하라 총리가 신헌법을 작성할 즈음 '전쟁 포기' 조항을 포함하고 그 조항에서 동시에 일본은 군사 기구를 일절 갖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하고 싶다고 제안했다"는 것이 맥아더의 '증언'이다.
이를 입증하는 사료(史料)는 두 가지가 있다. 시데하라의 비서였던 히라노 사부로(平野三郞)가 1964년 내각 헌법조사회에 제출한 '시데하라 선생에게 들은 전쟁 포기 조항의 탄생' 등 6점의 문서와 맥아더가 1958년 다카야나기 겐조(高柳賢三) 전 헌법조사회 회장에게 보낸 편지다. 모두 2016년 발굴·공개됐는데 공통적으로 '시데하라가 새 헌법에 전력(戰力) 보유 금지 내용을 포함하도록 맥아더에게 제안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맥아더가 '메이지(明治)헌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마쓰모토 조지(松本烝治) 국무상의 개정 헌법 초안에 격분해 연합국총사령부(GHQ)에 독자 작성을 지시한 초안 역시 재야 법학자 스즈키 야스조(鈴木安藏), 다카노 이와사부로(高野岩三郞) 등이 이끄는 진보 지식인 모임인 헌법연구회가 기초한 것이었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을 위시한 개헌 세력이 개헌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평화헌법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강력한 개헌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큰 우려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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