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3> 파가니니-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서영처 계명대 교수
서영처 계명대 교수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화가 밀레의 '만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평선 끝에 교회 종탑이 보이고, 종소리가 저녁 공기를 가르며 잔잔한 물결처럼 들판 가운데로 밀려온다. 붉게 퍼지는 노을은 은은한 종소리의 울림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까마귀 떼는 보금자리를 향해 날아간다. 가난한 부부는 들일을 멈추고 삼종기도를 올린다. 밀레의 어둡고 풍부한 색채는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진 공감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며 장엄하고 깊은 종소리와 그 여음을 만들어낸다.

'라 캄파넬라'는 종을 뜻하는 말이다. 파가니니(1782~1840)는 이탈리아의 천재 작곡가이자 바이올린의 대가였다. 광기에 찬 악마적인 기교와 개성 넘치는 초인적인 연주는 수많은 청중을 놀라게 했고, 그 때문에 그의 음악과 연주가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것이라는 등의 온갖 괴소문에 시달렸다. 이런 소문은 스탕달, 리스트, 하이네까지 사실이라고 단언하는 바람에 파가니니는 죽을 때까지 악마와 결탁한 음악가라는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거기에는 두드러지게 마른 그의 외모와 휘어진 매부리코, 폭풍 같은 혈기 등이 한몫을 했다. 파가니니가 항의하고 해명에도 나섰지만 소문은 사실보다 더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파가니니는 죽고 나서도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떠돌다가 아들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 사후 36년 만에야 고향 제노바의 교회 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며, 놀라운 재능을 당대와 후대가 모두 시기하고 모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 캄파넬라'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음악적 경종이다. 이 곡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b단조의 3악장으로 '종에 부치는 론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라 캄파넬라'는 매혹적인 주제 선율과 3도, 6도, 8도로 이어지는 화려한 더블스토핑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감미롭고 섬세한 종소리와 포효하듯 공격적인 종소리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

리스트(1811~1886)는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 중의 하나로 '라 캄파넬라'를 새롭게 편곡했다. 두 옥타브를 뛰어넘는 도약과 화려하고 민첩한 기교, 고음부 트레몰로의 아름다운 음색으로 종소리를 들려준다. 찰현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곡도 화려하지만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는 으르렁거리며 피아노가 지닌 관현악적인 음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한다. 리스트의 편곡은 새로운 창작은 아니지만 선배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파가니니 작품에 대한 지대한 찬사이자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라 캄파넬라'는 청중들이 좋아하는 곡이라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한다.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꼭 파가니니-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라고 알려준다.

유럽의 고도를 여행하다 보면 30분 간격으로 울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걸음을 멈추고 여러 개의 종이 각기 다른 높이로 우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우러나온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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