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탑건: 매버릭’에 매료된 남성관객들의 심리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참 놀라운 일이다.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었고, 이미 VOD 시장에 풀렸다. 이 정도면 극장에서도 간판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평일에 예매율 1위에 오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2일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이하 매버릭, 감독 조셉 코신스키) 이야기다. 그 사이 여름 특수를 위해 준비된 '한산: 용의 출현', '헌트', '비상선언', '외계+인' 등 대형 한국 오락영화들이 개봉했지만, '매버릭'을 꺾을 수 없었다. 드디어 이번 주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스코어다. 도대체 '매버릭'의 매력은 뭘까. 여자들은 모르는 '매버릭'에 열광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알아보자.

'매버릭'의 흥행은 n차 관람의 위력 때문이다. 심지어 극장에서 20여 회 관람한 이도 있을 정도다. 영화 도중 박수와 환호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 F열 14번 좌석(영화 속 F-14 전투기)이 인기라니 제대로 매버릭 팬덤(열광하는 문화현상)이다.

'매버릭'의 팬덤은 40, 50대 남성이 중심이다. 36년 전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1986)을 극장에서 보고 환호했던 세대이다. '매버릭'에는 오마주가 있고, 아날로그의 감성이 있으며 우정과 부성애, 다시 시작되는 사랑의 하모니가 있다. 그들에게 '매버릭'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최고의 오락영화이며, 가슴에 불을 지피는 사나이들의 로망인 것이다.

'매버릭'은 철저하게 남성의 감성을 자극한 영화다. 육중한 굉음과 스피드에 승부를 걸었다. 하늘을 나는 전투기, 땅을 질주하는 모터사이클과 스포츠카는 이런 남성들이 갈망하는 것들이다. 이런 표면적인 남성성 외에도 40, 50대 남성을 자극하는 지점이 있다.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로망의 시작은 토니 스콧 감독이다. '매버릭'이 끝난 뒤 '토니 스콧을 추모하며'(In memory of Tony Scott)라는 자막이 나온다. 이때 울컥하는 느낌을 받는다.

토니 스콧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오락 액션영화의 대가였다. '탑건'을 비롯해 '폭풍의 질주', '크림슨 타이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맨 온 파이어'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20, 30대 청춘들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12년 암투병 중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이름에는 묘한 그리움이 있다. 내 청춘의 초상도 비친다. 힘든 사회생활, 분주했던 연애와 실연, 가난한 일상 등이다. 토니 스콧은 청춘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 고마운 이였다.

그래서 전투기를 배경으로 모터사이클로 질주하는 장면이나, 항공모함의 전투기 이착륙 장면, 해변의 스포츠 장면 등 '매버릭'에 비친 '탑건'의 오마주는 그리움과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또 하나는 F-14 톰캣 전투기다. '탑건'에 등장하는 주력 함재기다. 가장 아름다운 전투기라는 평을 들었지만, '매버릭'에서는 한물 간 퇴역기로 나온다. F-14는 70년대에 이란에 79대나 제공됐다. 이란이 반미국가로 돌아서면서 미국은 F-14 기체를 완전 폭파해 퇴역시켰다. 부품이 이란에 건너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비행기의 기념비적인 해체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랬던 F-14가 건재하게 살아 돌아온 것이 '매버릭'이다. 다시는 못 볼 것 같던 그 젊음의 순간이 되살아난 듯 환호가 터진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미 미래는 무인기의 시대임을 영화는 상정한다. 더 이상의 파일럿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견이다. 그러나 매버릭(톰 크루즈)은 이렇게 답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견뎌온 세월이다. 아직 나는 건재하다. 그 빛나는 영광은 아직 죽지 않았다. '매버릭'의 F-14는 바로 그 공감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매버릭은 전편에서 사고로 사망한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스 텔러)와 갈등을 빚는다. 파일럿이 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엄마의 유언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길을 막아서는 매버릭의 뜻을 알 길이 없는 루스터. 아들과 갈등하는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매버릭의 헌신과 루스터의 노력으로 갈등은 눈 녹듯 녹아내린다.

전편에서 대립각을 벌이던 아이스맨(발 킬머)과의 우정도 감동적이다. 아이스맨은 매버릭의 귀환을 도우는 윙맨과 같은 역할을 한다. 투병 중에도 여전히 매버릭의 실력을 아끼는 그의 전우애는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들에게는 더욱 공감된다.

전편에 잠시 언급만 됐던 옛 연인 페니(제니퍼 코넬리)와의 재회는 뭇 남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탑건'에서 매버릭이 지휘관에게 호출 당한다. 지휘관은 그동안 매버릭이 친 사고들을 열거하다 끝에 '제독의 딸'을 언급한다. 그때 옆에 있던 구스가 "페니?"라고 말한다.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페니가 살아나 '방부제남' 톰 크루즈와 로맨스를 다시 시작한다. 젊은 시절의 겁 없는 로맨스가 아닌, 완숙돼 더욱 간절한 모습이다. 한국 중년 남성들이 가슴 속에 묻어 둔 로맨스 또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매버릭'은 스토리와 캐릭터, 액션과 촬영, 음악과 CG 등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것이 없는 완벽한 영화다. 거기에 세월을 무색케 하는 감성까지 자극하니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것이 관객 800만 명 돌파의 이유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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