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1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내리 재해복구 현장. 한 구옥에서 걸레를 빠는 자원봉사자들 얼굴에 소박한 웃음꽃이 피었다.
"고생한다"며 집주인이 건넨 캔커피를 손사래를 치며 "아이고,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어요"라고 거절하는 봉사자의 말 한마디에 다들 한참을 웃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 집에 이런 웃음은 어울리지 않았다. 진흙이 마당과 집 거실 바닥, 주방 등에 펄처럼 쌓여 '엉망진창'이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가정집의 모습은 어디 가고 오래 방치된 폐허와도 같았다.
집주인 이정순(58) 씨는 "새벽에 대피 방송을 듣고 피신해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집에 돌아왔을 때 보일러가 넘어가 기름이 범벅이 돼 있는 등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인근 상가도 물에 잠겨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고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이 씨는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이 집을 15년 전 샀다. 너무 마음에 들어 산 이 집에서 남편과 살면서 자녀들을 출가시켰다. 행복을 지켜준 큰 울타리가 태풍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상실감이 말로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씨는 혼자서 집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애를 쓰다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아 자원봉사자 지원을 신청했다.
이렇게 해서 이날 자원봉사자 6명이 달려왔다. 이들은 경북 포항시 간호사회 임원과 이사들로, 포항지역 여성단체협의회의 봉사 계획에 따라 이날 현장을 찾아 이 씨의 집에 지원에 나섰다.
이들은 걸레와 빗자루 등을 들고 집주인이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 곳을 돌아다니며 해결사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이 씨의 진두지휘에 시간이 흐를수록 집은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는 모습이었다. 집 분위기가 밝아지자 이 씨도 봉사자들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포항시 간호사회 김필현(43) 총무는 "제내리에 직접 와보니 알려진 것보다 피해가 훨씬 심각해 너무 놀랐다. 지금보다 몇 배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포항에 여러 악재들이 겹쳐있는 지금이지만, 잘 극복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했다.
대송면 이재민들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다목적회관에도 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탁 봉사를 진행 중인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에는 6일간 15톤(t)의 빨래가 몰려들었다. 온통 진흙으로 뒤범벅돼 애벌빨래가 필요한 이불이며 옷가지였다. 매일 15명 정도의 봉사자들이 이곳에서 묵묵히 펄 등을 제거해 세탁 차량 3대로 빨래를 돌렸다.
장영규(36) 희망브리지 매니저는 "지금껏 재해현장을 많이 다녀봤지만 수해 현장 중에서 제내리가 단연 역대급이다. 보통은 3일 정도면 끝이 보이는데, 포항은 일주일 만에 겨우 마무리되는 분위기"라며 "이재민들이 빨래를 가져오며 많이 우신다. 이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수해 주민인 신상열(72) 씨는 "봉사자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특히 해병대원들이 아니라면 수해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만 몰려오는 봉사자들과 구호품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도록 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없는 건 아쉽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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