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영의 풍수이야기] <3>대구 동구 상중심 마을과 응해산

팔공산 중심에 반쯤 핀 모란꽃…덕망 높은 인물 피어나
마을 입구 좁아 안쪽 대명당 암시…중심엔 달성서씨 구계 서침 묘소
대 이어 살던 달성 땅 헌납하면서 읍민들 관가 납부 이자 감면 청해
게 엉긴 모습 응해산과 응봉 아래 구계 손자·증손 묘소·첨모재 있어

상중심마을 입구에서 본 현무봉(목성)
상중심마을 입구에서 본 현무봉(목성)

대구 분지의 북쪽을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팔공산은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이 웅장하여 예로부터 갓바위, 동화사, 파계사, 은해사, 염불암, 부도암 등 수 많은 크고 작은 사찰을 품고 있는 대구 시민의 영원한 휴식처이다. 대구 동구 지묘동 공산 터널을 지나 동화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중간에 미곡교가 나온다. 여기에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용수천을 따라 약 2㎞ 올라가면 상중심(上中心) 마을이 있다.

상중심마을 입구쪽 전경
상중심마을 입구쪽 전경

◆팔공산 가장중심자리,상중심마을

상중심이란 마을 이름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바로 팔공산 전체에서 가장 중심 자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떨어지는 산줄기가 낙타봉을 거쳐 계속 남쪽으로 기복(起伏)과 굴곡(屈曲)을 거치면서 내려와 만들어진 터이다. 이곳은 청룡, 백호의 관쇄(關鎖, 문을 잠금)가 잘 되어있어 마을 입구가 아주 좁다. 그렇다 보니 관심을 가지고 입구를 찾지 않으면 안쪽에 마을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이러한 마을 입구의 모습은 그 안쪽에 대명당(大明堂)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음이다.

구계 선생 묘소
구계 선생 묘소

이곳 상중심 마을 중심 산록에는 달성서씨 구계(龜溪) 서침(徐沉) 선생의 묘소가 있고 그 마을 중심부에 중심재(中心齋)가 있다. 최근 대구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에 있는 시조공 이하 4대조의 단소(壇所)를 중심재 뒤편으로 이설하였고, 중심재도 새로이 신축하였다.

상중심 마을은 흰 모란(牧丹, 목단)꽃이 반쯤 피어 있는 형상이다. 모란은 화왕(花王)이라 하여 꽃 중의 꽃으로 꼽는다. 서침 선생의 묘소는 모란의 새 가지 끝에 맺은 명당자리이나 재혈과 좌향이 아쉬움을 준다. 이것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도 역량이 줄어들 것이며, 자손의 건강상 문제 등 흉화가 따라온다.

이곳의 주산(主山)은 화성(火星)이며 현무봉은 목성(木星)이다. 이러한 기운은 아름다운 모란꽃 향기가 사방에 퍼지듯 덕망 높고 녹봉(祿俸)받는 인물이 태어나며, 나무에 꽃이 많이 피는 이치로 후손이 번창하는 특징이 있다. 간좌 곤향(艮坐 坤向)의 자리로 팔공산 3대 명당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암서원 전경
구암서원 전경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서침선생

조선 영조 44년(1768)경에 간행된 『대구읍지(大丘邑誌)』 달성 성지(城池) 조를 보면 '부(府)의 서쪽으로 4리에 있으며 돌로 쌓은 둘레가 944척이고 높이가 4척이다.현재의 달성공원을 일컫는 말이다. 성안에 세 개의 우물과 두 개의 연못이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또 인물 조에는 '서침(徐沉)은 정평공(貞平公) 서균형(徐鈞衡)의 아들이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 때의 인물로 호는 구계, 벼슬은 제처사(制處使)에 이르렀다. 대를 이어 달성에 살았는데 세종조에서 달성이 천연적인 성지라는 소문을 듣고 그 땅을 바꿀 것을 명하고 또 그 보상을 논의하매 구계공이 보상을 받지 않고 읍민이 관가에 납부하는 환곡의 이자를 다섯 되씩 줄여주기를 청하니 임금께서 그 뜻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대구 읍민에게 다섯 되씩 줄여주고 또한 남산의 옛 역참 터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는 평소 공께서 추구하던 위민포덕(爲民布德)과 박시제중(博施濟衆,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의 덕행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러한 구계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감동한 대구부민들이 구계 선생의 덕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조선 현종 6년(1665), 현 대구초등학교의 서남쪽 언덕인 연구산 중턱에 숭현사(崇賢祠)를 세웠다. 이후 구암서원은 숙종 43년(1717) 동산동 229번지로 이건하였고, 1995년 현재의 대구 북구 연암산 아래로 이전하였다.

구계 선생이 헌납한 달성공원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의 올곧은 인품을 상징하여
구계 선생이 헌납한 달성공원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의 올곧은 인품을 상징하여 '서침나무'라 불린다.

구계 선생이 헌납한 달성공원에는 수령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는 한때 서침의 세거지였던 이곳을 지켜주는 수문장이다. 그의 올곧은 인품을 상징하여 '서침나무'라 불린다. 이 노거수는 대구시 보호수(지정번호 1-3)로 지정된 나무이다.

2019년 12월 7일 달성서씨 대종회는 사회 각계각층의 화합과 상생발전을 기원하고 구계 선생의 정신적 가치철학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시가 50억원 상당의 동산동 옛 구암서원 터 2,500㎡를 대구시(중구청)에 무상 기부한 바 있다.

시지정문화재인 구암서원은 배려와 나눔의 선비정신인 인의예지신을 실천하는 곳으로 대구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된 서원이다. 밤이 되면 서원 앞쪽으로 대구 도심의 야경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설치하고 미디어 기능을 구현한 '미디어 파사드'와 역사 콘텐츠를 연계, 야간 체험형 관광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대구시가 추천하는 야경 7선 중 하나이다.

품자형 현감공 묘소와 응봉
품자형 현감공 묘소와 응봉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에게까지 복이 미친다

대구 시내에서 공산터널 가기 전 왼쪽에는 응해산(凝蟹山)과 응봉(凝峰)이 있다. 이는 바닷가에 서식하는 게가 서로 엉겨 있는 모습을 보고 명명한 것이다. 산봉우리의 형상이 영락없는 게 껍데기 같은 모습이고 게 껍데기가 서로 엉겨 있으니 응해산, 응봉이다.

이곳 게형의 핵심 혈처(입 언저리)에는 하양 현감을 역임하고 절의를 지킨 현감공파 파조인 구계 선생의 손자 제(濟)와 증손 맹원(孟元) 묘소가 있고 산 아래에는 첨모재가 있다. 이곳은 품자형(品字形)의 특이한 혈처로 상석에는 자좌 오향(子坐 午向)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게가 태양(午)보다는 달(丁)을 좋아하는 이치와 같이 이곳은 계좌 정향(癸坐 丁向)으로 놓아야 합법이다. 보름게는 워낙 활동을 많이 하여 살이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첨모재와 응봉
첨모재와 응봉

풍수 지가서(地家書)에서 게형은 '게가 알을 많이 낳으니 후손이 번창하고 다리로 먹이를 끌어 모으니 부자가 난다'고 한다. 2000년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달성서씨는 전국에 43만명 정도 되며 9개 분파가 있는데, 다른 파는 3만~5만명이나 현감공파 후손은 14만3천여명으로 숫자로는 단연 최고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풍수에서 주장하는 말이 사실로 증명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이 묘소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장 확인차 방문시 재실을 관리하는 후손을 만나보니 숫자가 하도 많아 재종(再從, 6촌) 간에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고 한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에게까지 복이 미친다)'이라, 하늘이 내린 복 가운데 가장 으뜸이 후손 번성하는 것이다. 후손 숫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훌륭한 선조의 적선정신에 하늘도 감복하여 후손이 많이 나올 자리를 내어 준 것으로 보인다.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 문강풍수지리연구소 원장

노인영(풍수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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