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타르타로스에 갇힐 인간들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며칠 전 이탈리아에서 흥미로운 외신이 전해졌다.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청동 조각상들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대량 출토됐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고조선 시대 유물인 셈이니 현지에선 '역사를 새로 쓰게 될 발견'이란 평가까지 나왔다.

조각상들은 의술 등을 관장하는 아폴론, 그의 손녀이자 건강을 주관하는 히기에이아 등 그리스·로마 신들을 묘사했다. 온천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을 감안하면 회복과 치유를 기도한 당시 권력자들이 바친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대중목욕탕은 아니었단 뜻이다.

신들이 늘 인간을 돕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를 넘게 거만을 떤 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엄벌을 내렸다. 그리스 신화 속 '지옥'인 타르타로스에는 최고신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온갖 악당들이 영원히 유폐돼 있다.

살모네우스 왕은 분수를 모르고 까불다 지옥에 떨어졌다. 마차에 쇠북, 쇠구슬을 단 채 질주하거나 사방에 횃불을 던져 제우스의 천둥과 번개를 흉내내는가 하면 제우스와 비슷한 옷차림으로 다니며 신에게 바칠 제물을 대신 챙겼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죗값이다.

탄탈로스 왕은 신들의 총애를 배은망덕으로 갚은 교만 탓에 극형에 처해졌다. 신들의 비밀을 마구 떠벌리고 다닌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만든 요리로 신들을 시험했다. 결국 그는 눈앞의 과일과 물을 평생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벌을 받았다.

페이리토오스 왕은 '저승의 영부인'을 납치해 아내로 삼으려다 타르타로스에 갇혔다. 명계(冥界)의 지배자 하데스 신을 속이려는 계획은 애초에 무모했지만 욕심에 눈이 멀었다. 모든 일을 잊게 하는 '망각의 의자'에 앉은 그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만이다. 어쩌면 자신의 그릇보다 더 큰 부와 권력을 부여받으면 기고만장(氣高萬丈)해지는 게 인간의 타고난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로또 거액 당첨자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씁쓸한 최후를 맞았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까닭이리라.

'이태원 참사' 이후 정치권 행태에 혀를 차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2의 세월호 정국이 될까 봐 또는 그렇게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한다. 가족을 잃은 유족을 포함해 국민의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는 저들이 정녕 지도자란 말인가!

이번 국가적 재난에 대한 정부 대응과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20%대에 그친다. 바닥을 치는 대통령 국정 지지도보다도 더 낮다. "우려할 만한 인파가 아니었다" "마음의 책임" "웃기고 있네" 같은 참모들의 끝판왕 망언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 야당의 경박한 잔꾀 역시 외면당하고 있다. 여당이 연거푸 자살골을 넣는데도 지지율에서 앞서가지 못한다. 국정조사 서명운동이 당 대표의 사법 처리를 막으려는 포석임을 모르는 이가, 퇴직 대통령의 반려견 소동 속뜻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으랴.

아마도 타르타로스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은 죄인은 시시포스일 것이다. 호메로스가 '세상에서 가장 교활한 인간'으로 평가한 그는 굴러내리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하는 처지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사기극의 비참한 말로다.

그런데 그건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 깨우침 없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정치인들의 저열한 작태를 계속 지켜봐야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절망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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