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욱 등 공소장 보니…사망 은폐하려 밤새 첩보 5천건 삭제 "작전 방불케"

서욱 "강도 높은 보안 작전" 지시
국정원도 '원장님 지시' 따라 관련 자료 모두 회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첩보 삭제 지시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장관을 재판에 넘긴 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이날 국가정보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박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용전자기록등손상·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서 전 장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연합뉴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에서 피살된 이튿날, 국방부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지휘 아래 고인의 사망 사실 은폐를 위해 밤새 첩보 약 5천건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에서도 박지원 전 원장의 지시로 수십 건의 첩보와 보고서들이 지워진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서 전 장관과 박 전 원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2020년 9월 22일 밤 이 씨 사망을 인지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튿날 새벽 1시 안보 관계 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해 '피격 및 시신 소각 사실에 관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위 사실이 일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서 전 장관은 합참 작전본부 작전부장에 전화를 걸어 ▷서해 공무원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수거해서 파기 ▷예하 부대가 이 사건 관련 내용을 알고 있으면 화상 회의를 통해 교육 ▷국방부 및 합참에서 책임지고 조치 이행 등을 지휘했다.

이같은 지시는 합참 작전부장과 예하 지휘관들을 통해 담당 부대와 관련 기관에 전달됐다. 지시 내용은 "서해 관련 사항은 모두 삭제하라", "모든 첩보와 시트지를 파기하고 타 보고서에 인용 및 탑재를 금지하라", "해당 부대 지휘관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관련 내용을 전파하지 마라" 등이었다.

이에 따라 56개 부대가 수신한 전문,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밈스) 내 첩보 60건, 18개 부대 정보 유통망 내 첩보 5천417건이 삭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첩보 원음 파일을 비롯한 문서의 대부분이 삭제되거나 손상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서 전 장관 측은 그동안 첩보나 보고서의 원본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보안 유지를 위해 배부선을 조정한 것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국정원에서도 이씨 사건 관련 첩보와 이를 분석한 보고서 등 55건이 삭제됐다.

박지원 전 원장은 서 전 장관과 함께 새벽 안보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노은채 당시 비서실장에게 "9월 22일께부터 국가정보원에서 수집한 첩보 및 관련 자료를 즉시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 전 실장은 23일 오전 9시 30분께 국정원 차장 및 기조실장을 소집해 박 전 원장의 지시를 이행했다.

서 전 장관은 이후 연합뉴스 보도로 이씨의 사망 사실 은폐가 불가능해지자, 국가안보실의 지시를 받아 이씨를 자진 월북자로 몰아가는 '월북 조작'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가 스스로 월북한 것처럼 보이도록 일부 현장 상황만을 골라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허위 수사 결과 발표와 브리핑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검사)는 지난달 29일 국가정보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박 전 원장과 노 전 비서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용전자기록등손상·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서 전 장관도 불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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