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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그리운 벗과 나누고픈 이야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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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탁구장(이동훈/ 학이사/ 2021)

'몽실탁구장'은 등불 같은 시집이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 같기도 하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전조등 같기도 하다. 1부 '시인의 생가는 시일 뿐', 2부 '복福은 한 입 거리 수단일 뿐', 3부 '실망은 기대의 후속 편일 뿐'이라는 타이틀 아래 스무 편씩 소개된 총 60편의 시는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 같은 느낌도 준다. 그 알전구가 하나하나 켜질 때마다 캄캄하던 눈앞이 환하게 밝아진다.

저자인 이동훈 시인은 수많은 예술가를 친구처럼, 이웃처럼 살가운 시선으로 소개한다. 사람과 사람, 작품과 작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것들은 그물코처럼 엮여서 생각의 고리를 파생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몽실탁구장'은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는 수다집이기도 하다. 그 말의 꼬리를 자르기란 쉽지 않다. 이 납작한 책 속에는 예술가의 삶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근원적 슬픔과 삶의 애잔함이 물처럼 번져와 마음을 적시고, 그리움과 간절함으로 마음의 그물을 끌어당긴다.

표제작인 '몽실탁구장'에서 작가는 '몽실이를 닮은' 아주머니와 '탁구대 양쪽만 집중 공략하는 극단주의자' 아저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뭇 사나워진 분위기'에 '허, 그것참만 연발'하다 '탁구장 옆 슈퍼에서', '우유로 건배'를 하는 사람들. 건배를 나눈 것이 흰 우유였는지 바나나우유나 딸기우유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리라. 시인의 말처럼 '몸 쓰며 기분 내는 일이란 사람 사이 간격도 좁히는 것'이기에 부대끼고 울고 웃으며 풀어나가는 그 삶의 풍경이 담담한 울림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인은 그들 모습에서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탁구공을 능숙하게 되받아치듯, 신산한 세상살이의 웬만한 풍파는 가볍게 받아넘기는 지혜를 발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예술가들의 봄밤, 혹은 단풍 구경이 그려지고, 오두막 혹은 선술집이 떠오르는 시집, '몽실탁구장'. 따스한 커피 한 잔, 마음을 녹이는 차 한 잔이 그리울 때, 좋은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다.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커피값을 구하는 노숙인에게 외투를 벗어주는 사내'처럼, '남의 옷만 재단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내준 외투를 '추위에 떨고 있는 시다에게' 건네준 전태일처럼,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르네상스 다방과 인근 주점' 어느 곳에서든 오래오래 마음을 나누고 싶은 시집, 우리 생의 압축 파일 같은 시집(集, ZIP)이다.

이경애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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