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뉴 관광지] 역사흔적 따라 걷는 경주 '숨은 숲' 3곳

경주 단석산, 덕동호 둘레길, 진평왕릉 둑방길 걷고 역사의 향기도 느끼고~
단석산 중턱 500m 고지 '화랑의 언덕'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덕동호 둘레길, 고선사 상상하며 한적한 시골 마을 풍경 즐기기에 그만
진평왕릉 둑방길 500여 그루 겹벚꽃, 진평왕릉~낭산 황금들판 정취

보문들판 가운데 있는 진평왕릉 앞 숲. 진평왕릉은 여느 왕릉의 화려한 장식 대신 크고 작은 나무에 둘러싸여 사시사철 방문객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품어준다. 김도훈 기자
보문들판 가운데 있는 진평왕릉 앞 숲. 진평왕릉은 여느 왕릉의 화려한 장식 대신 크고 작은 나무에 둘러싸여 사시사철 방문객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품어준다. 김도훈 기자

예나 지금이나 경주는 숲이 가득한 도시다. 해마다 봄이 되면 경주 전역은 벚꽃 명소가 된다. 물론 꽃잎이 떨어져도 경주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 나무들은 언제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경주의 숨은 숲 3곳을 소개한다. 그곳에 스민 역사 흔적은 덤이다.

◆김유신과 '화랑의 언덕'

'화랑의 언덕'은 벚꽃이 하나도 아쉽지 않은 나들이 명소다. 경주 시가지 서쪽 단석산 중턱 500m 고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특히나 드넓은 하늘과 푸른 초원이 맞닿은 모습이 장관이다. 2019년 핑클이 출연한 TV프로그램 '캠핑클럽'을 통해 전국구 인생사진 명소로 부상했다.

경주 사람에겐 '화랑의 언덕'보다 'OK목장'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조각공원을 낀 아름다운 목장이어서 1980, 90년대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제법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지금의 청소년 수련 시설이 생긴 건 2000년대 들어서다. '화랑의 언덕'이란 이름도 그 무렵 붙었다.

주차장에 다다르면 맨 먼저 연못 수의지(守義池)를 만나게 된다. 김유신이 자기를 따르던 화랑 60여 명과 함께 단석산에 올라 수련했는데, 김유신과 낭도들이 타고 다니던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위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너른 언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푸른 초원 위 군데군데 심어 놓은 소나무와 벚나무가 더해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겨와 피크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적재적소엔 방문객을 위해 포토존을 만들어 놨다. 수의지 앞 그네, 벚나무 아래 피아노, 대형 의자와 하늘을 향해 뻗은 계단까지, 근사한 조형물이 유혹한다. 방문객은 초원 곳곳에 놓인 조형물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는다. 인스타그램에 '#화랑의언덕'을 검색하면 수만 개의 게시물이 뜰 정도다.

가장 인기 있는 인생사진 명소는 '명상바위'다. 바위에 앉으면 다랑논으로 유명한 내남면 학동마을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효리가 "이런 풍경 처음 봤어, 태어나서"라고 감탄했던 장소다.

찾아가는 길 또한 즐길거리다. 경부고속도로 건천IC를 빠져나온 뒤 '화랑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특히 들머리인 내일리 마을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3.5㎞ 산길은 터널처럼 우거진 숲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핑클 멤버 성유리가 "우와, 이 길 정말 예쁘다"라고 말한 곳이 바로 이 길이다.

덕동호 둘레길. 보문관광단지를 기점으로 15㎞ 정도 이어지는 길 가운데 호수 동쪽을 감싸고 도는 6㎞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김도훈 기자
덕동호 둘레길. 보문관광단지를 기점으로 15㎞ 정도 이어지는 길 가운데 호수 동쪽을 감싸고 도는 6㎞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김도훈 기자

◆고선사지와 '덕동호 둘레길'

국립경주박물관 뒤뜰엔 압도적 크기의 삼층석탑 하나가 서있다. 크기가 주는 위압감에 더해 좌중을 압도하는 장중함과 품격이 느껴진다.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이다.

고선사 탑을 이야기할 때면 늘 감은사 쌍탑도 함께 언급된다.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은 고선사 탑과 감은사 탑에서 시작해 석가탑으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선사 탑은 감은사지 석탑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탑이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탑이 있던 고선사는 감은사가 있는 동해로 향하는 길목, 토함산 북쪽 자락에 있었다. 신라 신문왕(681~692) 때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다. 1914년 그의 일대기가 새겨진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의 깨어진 아랫부분이 절터에서 수습되어 고선사의 내력이 밝혀지게 됐다. 원효는 어릴 적 이름이 서당(誓幢)이어서 서당화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곳 탑이 제자리를 떠난 것은 1975년의 일이다. 경주 일원에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덕동댐이 지어지면서 절터는 물에 잠겼다. 앞서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석탑은 절에 남아있던 주춧돌‧장대석 등 여러 사찰 부재와 함께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석탑이 고향을 잃었을 때 암곡동 골짜기 아랫마을 주민도 고향을 잃었다. 댐 건설을 위해 많은 주민이 고향을 내어 준 것이었다. 이후 일부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일부는 마을 인근 산기슭으로 올라와 다시 터를 잡았다고 한다.

덕동호 둘레길은 물에 잠긴 고선사를 상상하며 한적한 시골 마을 풍경을 즐기기에 그만인 곳이다. 보문관광단지를 기점으로 15㎞ 정도 이어지는 길 가운데 호수 동쪽을 감싸고 도는 6㎞ 구간이 특히 아름답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터를 잡은 집들이 운치를 더한다.

운이 좋다면 시골 촌로가 펼쳐놓는 옛 마을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 오래오래 숨겨두고 혼자 즐기고픈 길이다.

◆진평왕릉과 '선덕여왕길'

경주시가 정한 둘레길 10곳 중 하나다. 명활성에서 시작해 보문관광단지 들머리인 숲머리 마을과 진평왕릉을 차례로 지나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으로 이어지는 6.1㎞ 길이다. 길 양쪽으로는 너른 보문들이 펼쳐져 있다.

이 길은 구간마다 각기 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명활성에서 숲머리 마을을 지나 진평왕릉까지 이어지는 2㎞ 구간은 '숲머리 둑방길'로도 불리는데 특히 봄에 찾는 이가 많다. 호젓한 둑방길을 따라 500여 그루 겹벚꽃 나무가 심어져있어서다. 겹벚꽃은 일반 벚꽃에 비해 개화가 10일 정도 늦어 짧은 벚꽃 엔딩의 아쉬움을 단박에 해결해준다.

벚꽃 철이 지났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이 길을 "일본 교토의 '철학의 길'보다 아름다운 산책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조용히 거닐며 사색하고 싶을 때도 찾아갈 만한 길이다.

반면, 진평왕릉부터 낭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을에 찾는 이들이 많다. 금색으로 일렁이는 들판을 따라 가을 정취를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흡사 누렇게 익은 너른 들판을 헤엄쳐 나가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평화롭고 드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조용히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길의 백미는 보문들 가운데 있는 진평왕릉 앞 숲이다. 진평왕릉은 여느 왕릉의 화려한 장식 대신 크고 작은 나무에 둘러싸여 사시사철 방문객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품어준다.

특히 왕릉 앞 푸른 들판엔 커다란 몸집의 느티나무와 왕버들 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이곳에선 꼭 쉬어가길 권한다. 넓게 퍼진 나무그늘 아래 운치 있게 놓인 벤치는 절대 놓치면 안 될 포토존이다.

경주 시가지 서쪽 단석산 중턱 500m 고지에 있는 화랑의 언덕. 드넓은 하늘과 푸른 초원이 맞닿은 모습이 장관이다. 김도훈 기자
경주 시가지 서쪽 단석산 중턱 500m 고지에 있는 화랑의 언덕. 드넓은 하늘과 푸른 초원이 맞닿은 모습이 장관이다.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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