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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03> 조선식으로 재해석한 죽림칠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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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이용우(1902-1952),
이용우(1902-1952), '죽림칠현도(竹林七賢圖)', 1943년(42세), 종이에 담채, 32.5×47㎝, 개인 소장

시냇가 대숲에서 갓 쓰고 한복 입은 인물들이 음악과 시주서화(詩酒書畵)를 즐기며 흥겹게 어울린 장면을 그렸다. 죽림에 모인 7명의 현자를 그리는 중국에서 유래한 고사인물화 죽림칠현도를 자국화, 현지화한 이용우의 '죽림칠현도'다. 요즘 말로는 로컬라이징이다.

죽림칠현은 사회정치적 혼란에 대한 저항을 대숲이라는 탈속의 장소로 들어가는 행위로 표출한 은자 집단의 한 전형이다. 이들은 죽림에서 대취(大醉)의 통음(痛飮)으로 무도한 세상을 망각하고 초월하려했다. 3세기 위진시대에 살았던 혜강, 완적, 상수, 유령, 완함, 산도, 왕융 등은 알고 나면 씁쓸한 면도 있지만 어쨌든 죽림칠현은 그런 이미지로 이해돼왔다.

어느 시대건 세상은 대부분 난세이므로 죽림칠현도는 한자문화권 지식층에게 언제나 매력적인 주제였지만 혼란한 시대엔 더욱 화가들의 붓을 이끌었다. 일제강점의 근대기에는 안중식, 조석진을 비롯해 강필주, 지운영, 이도영, 김은호, 최우석, 백윤문, 김기창 등이 그렸다. 하지만 모두 중국풍이다.

이용우만 과감하게 원본에서 탈각한 재해석을 시도했다. 한국인의 모습이어서 주제가 더욱 실감나는 데다 풍속화의 재미까지 넣었다. 이용우는 죽림칠현도를 조선적인 아회(雅會)의 장면으로 개작해 고사인물화 장르를 풍속화로 바꿔놓았다. 이용우가 이런 유형의 조선식 죽림칠현도를 여러 점 그린 것은 그만큼 호응이 좋았고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제일 오른쪽 인물은 혜강이다.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된 그는 사형 직전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뒤쪽으로 책과 문방구가 놓인 책상과 구멍이 숭숭 뚫린 괴석을 보면 슬슬 그은 붓질이 아회의 서사를 가뿐히 전달해 이용우의 필력이 실감난다. 청량한 대숲인데 화병엔 또 대나무 한 가지를 꽂았다.

이용우는 만 아홉살에 서화미술회 1기생으로 입학해 20대 청년들과 나란히 그림을 배웠던 '그림의 신동'이었다. 심전(心田) 안중식에게 춘전(春田)으로 호를 받았고, 열일곱에 서화협회 최연소 정회원이 되었으며, 열아홉에 창덕궁을 장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4등상을 수상하며 이상범, 노수현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데뷔했다. 어느 해 육당 최남선의 집에 세배하러 갔다가 다락문에 매화를 그려 '금세오원(今世吾園)'이라는 별명을 받은 일화도 전한다. 장승업의 환생이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이용우는 51세로 작고해 역량을 다 펼치지 못했으나 최근 가로 22m의 대작 '강산무진도'가 옥션에서 공개되며 천재성이 다시 주목 받았다. '죽림칠현도'는 전통적인 주제의 계승이면서 동시에 변용이다.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동양화가의 모색과 고뇌가 서려있는 작품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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