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재봉 칼럼] 괴담의 유구한 전통

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유관 국제기구들과 국내외 과학자들, 전문가들이 나서서 인체에도, 바다에도 아무런 위험이 없음을 증언하고 설득하지만 반일 쇄국 좌파 세력의 끊임없는 음모론 확산에는 역부족이다. 급기야는 천일염 사재기가 극성이다. 한심하고 허탈하다.

대한민국의 의식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세계 10대 강국에 들었다고 자랑하는 나라가 이처럼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음모론에 이렇게 휩쓸릴 수 있나? 만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그토록 위험한 것이라면 방류가 시작되면 한국만 영향을 받을까? 일본 바로 남쪽의 대만은? 필리핀은? 베트남은? 동남아, 서남아 전체는? 이 나라들에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여전히 봉건국가인 중국만이 한국처럼 방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이 괴담에 휩쓸린 것은 물론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광우병 파동 때도, 사드 파동 때도 근거 없는 괴담에 휩쓸리면서 사회가 혼란과 분란에 빠지고 외교와 안보가 위협을 받았다.

괴담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위정척사파의 태두로 반서양 쇄국정책을 주창했던 당대 최고 지식인 이항로(李恒老·1792~1868)는 서양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양을 천지 대세로 말하면 서극의 숙살(肅殺)한 편기요, 수국의 인갑(鱗甲)과 동일한 유이다." 즉, 서양은 살기등등한 지구의 서쪽 끝 물의 나라에 살고 있는 비늘 달린 물고기, 거북이, 조개, 가재와 같은 종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성품은 생을 가벼이 하고 죽음을 즐거워하며 그들의 음은 이(利)를 좋아하고 의리(義理)를 어둡게 하며, 그들의 술(術)은 환영을 기뻐하고 상도(常道)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北虜(북로·북쪽 오랑캐)는 이적인지라 오히려 말할 수나 있지만 서양(西洋)은 금수인지라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고 했다. 즉, '동이' '서융' '남만' '북적'과 같이 중국의 주변부에 살고 있던 오랑캐들은 그나마 중국의 옆에 살고 있어서 중국의 문명을 흉내 낼 수 있었다. 조선이 '동쪽 오랑캐'이면서도 중국 문명을 받아들여 '소중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지만 서양은 중국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살던 '인갑' '금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르칠 수도 없고 따라서 무조건 '척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에 서양 개신교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할 때 당시 조선에서는 서양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려가 눈을 빼고 외국에 노예로 판다는 괴담이 파다했다. 조선의 여성들을 교육시키고자 이화학당을 개설한 메리 스크랜튼(Mary Scranton)은 이러한 괴담과 싸워야 했다. 이 이화학당을 개설했을 때 첫 정규 학생은 가난한 소녀였다. 부모가 너무 가난하여 딸을 외국 선교사들에게 맡긴 것이다.

당시 상황을 스크랜튼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마저 며칠 후 그 어머니가 와서 차라리 굶을지언정 외국인에게 딸을 맡길 수 없다며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나쁜 어머니, 정신이 올바로 박히지 않은 여인이라고 비난하면서 '노부인'(스크랜튼 여사)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잘해줄 거다. 좋은 옷도 입혀주고 음식도 많이 줄 거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데려갈 거다. 그러면 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으냐'며 설득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반미, 반일 괴담은 끝없이 생산되는 반면 반중 괴담은 없다는 사실이다. 초대 주조선 미 국무관을 지낸 폴크 소위(George Foulk·1856~1893)는 갑신정변 당시 조선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미국에 보고한다. "조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중국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아무리 조선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해도 '대국인'이라고 하여 대응을 하지 못합니다. 반면 조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에게 잘못하면 일본인 몇 명을 타살하고 집을 불태우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음모론, 특히 반일, 반미 음모론의 뿌리는 깊고 깊다. 반도체, 2차전지, 전기자동차, 영화, 대중음악, 화장품, 패션에서 세계를 휩쓰는 한국의 어둡고 수치스러운 전근대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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