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40> ‘아리랑’의 에로티시즘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아리랑.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리랑.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아리랑'은 한국인의 몸 깊은 곳에서 분출하는 노래이며 민족 공동체를 대변하는 민중의 노래다. '아리랑'은 원래 강원도와 인근 산간 지역에서 부르던 노래인데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공사에 동원된 부역꾼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고 경기소리로 다듬어지게 되었다.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1926)을 만들면서 전통민요 아리랑에 관심을 가지고 경기자진아리랑을 사현금(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가사를 새로 지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이다. 영화 <아리랑>은 민족의 절박한 현실을 담았고 노래도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전 조선인의 애창가요가 되었다. '아리랑'은 단순히 한이나 흥을 돋우는 여음이 아니라, 이별의 고통과 슬픔, 욕망과 인생무상을 고조시키는 노래가 되었고 아리랑 고개는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고개로 각인되었다. 가사는 아름답고 비극적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중략)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폴란드 쇼팽 음악원 교수가 테너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아리랑'을 들은 적이 있다. 이들은 즉흥연주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며 간절한 만남과 이별이 이루어지던 아리랑 고개에 에로틱한 여인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테너 색소폰의 촉촉한 음색과 감칠맛 나는 변주는 매혹적인 이 여인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고, 선율은 굽이치는 고갯길과 여인의 몸매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한 사람에게 목매는 여인도 아니며 님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고 있는 처연한 여인도 아니었다. 이 여인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게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날 것이라고 장담하는, 굳이 갈 테면 가라고 보내주는 당차고 세련된 여인이었다.

이 연주자들은 '아리랑'의 가사와 가락을 에로티시즘으로 해석했다.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정신을 해명하며 존재의 문제와 관련된다. 에로티시즘에는 생명의 본능과 자아 존속, 상실과 회복 등 다층적인 의식들이 투영된다. 그러고 보면 '아리랑'의 여인은 고려가요 '서경별곡'의 여인과 정조를 같이 한다. 이 여인들은 순종하고 인고하는 전통적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분출하며 남성과 대등 하고자 하는 여성이다. '아리랑'과 '서경별곡'에는 이렇게 솔직하고 적극적인 여성 주체가 나타난다.

'아리랑'은 경기도 아리랑 외에도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 지역 정서를 담은 다양한 '아리랑'이 있다. 그만큼 '아리랑'이 거느리는 내면은 깊고 폭넓다. BTS가 '아리랑'을 무대에 올리면서 어느새 '아리랑'도 전 세계 젊은이들이 즐기는 노래가 되고 있다. '아리랑'은 오랫동안 한이 아니면 흥이나 신명으로 해석되어 왔다. 한은 자칫 약자의 논리에 갇히는 격이 될 수 있다. 창조와 혁신은 전통을 재해석, 재편성하여 핵심 가치를 오늘의 현실에 맞게 편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BTS가 부르는 '아리랑'은 그리 새롭지 않다.

고난과 시련이 많은 나라일수록 예술성 짙은 노래들이 많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오랜 세월 외세의 침입을 받아 온 폴란드인들은 '아리랑'이 내재하는 겹겹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우리가 '아리랑'이 포괄하는 여러 의미, 그중에서도 에로티시즘의 생명 미학을 오랫동안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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